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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l 30. 2024

아내, 아들과 함께 보낸 4박 5일의 추억

지난 목요일 저녁은 우리 세 식구가 순천에서 모여 하나 된 .

서울대 박사과정 논문이 통과되어 8월 29일 서울대 가을학기 졸업식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될 아들이 친척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러 집에 왔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순천 버스터미널로 온 아내와 서울에서 순천역으로 기차를 타고 온 아들을 마중하느라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으로 운전하고 다녔다. 아내가 선물해 준 차를...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순천 집에서, 아들은 에어컨 있는 방, 나와 아내는 거실에서 잤다.

금요일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가 오후엔 반차를 내고 가족과 합류했다.

아들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아내의 모습이 아들만큼이나 예쁘다. 더불어 나도 웃는다.

엄마 아빠가 웃으니 아들도 웃는다.

비가 내리는 길을 헤치며 광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선암사를 들렸다.

지난 사월 초파일 며칠 전, 매화가 아직 피어 있을 때 아내와 함께 선암사와 송광사에 들렸었다.

고즈넉한 선암사에 비해 송광사는 건물과 사람이 너무 많아 혼잡했다.

절이 좀 조용한 맛이 있어야지...

우리 부부에겐 선암사가 더 어울리고 좋아서, 아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아들, 아내와 함께 걸어 들어가는 숲길이 비에 젖어 있었다.

비가 오니 구름에 가려 햇빛이 없는데도 나뭇잎은 초록으로 빛났다.

다른 색은 흡수하고 초록색만 반사해서 보여 주는 초록 잎 가득한 숲길엔 초록빛이 넘쳐흘렀다.

숲길에 오래 서 있으면 우리 가족도 스머프처럼 초록색으로 물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머프가 사는 집이 아마도 버섯모양이었지?

비가 내리니 나무 아래 풀숲엔 버섯이 내 세상이라 하고 기지개를 켜며 꽃처럼 피어 있었다.

어쩌면 스머프 글을 쓴 작가가 우리 가족처럼 비가 내리고 초록빛이 가득한 숲길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정호승 시인의 뒷깐으로도 유명한 선암사에 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학생 때부터 서울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남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먼 훗날 피곤한 도시에 찌들어 쉼이 그리울 때, 남도 어느 곳이라도 아들에게 고향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곳을 생각해 내듯이, 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토요일엔 살아계신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난 후, 친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담양군 월산면 천주교 공원묘원에 들렸다.

장례식 때 할머니 할아버지 유골함을 품에 안고 천주교 공원묘원까지 옮겨 모신 손자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보살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박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절을 올렸다.

살아계셨다면 정말 많이 기뻐하셨을 텐데...

아들이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를 '정박사'라 불렀다. 유치원에서도 이름보다 별명 ‘정박사’로 불렀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많은 책을 읽은 아들이 선생님 질문에 잘 대답해 붙은 별명이었다.

나는 어린 아들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는 걸 일삼았다. 아들과 가족 이름으로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어 두 팔 가득 책을 빌렸다.

처음엔 아들이 좋아할 책을 골라 주다가, 나중엔 도서관 서가의 책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서대로 빌렸다. 아들은 장난감 선물도 좋아했지만, 책 선물을 더 좋아했다.

충장로 서점에서 책을 몇 권 골라 사주면, 아들은 나를 따라 산수동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사준 책을 읽었다. 집에 도착할 때쯤엔 반권의 책을 읽었다.

아들을 보면 별명도 참 중요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남을 별명으로 부를 땐 기왕이면 좋은 별명으로 불러주어야겠다.

정박사라고 불리던 어린 아들이 진짜 정박사가 되어 나타났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기쁘다.

한편으론, 우리 부모님께 죄송스럽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께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담양 관방제림을 가족이 함께 걸었다. 담양은 내가 정년퇴직했던 회사의 두 번째 근무지다.

일요일엔 광주호 생태공원을 또 함께 걸었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생태공원을 조금 걸었을 때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비가 오는 날이 그리워질 줄...

아내와 아들은 생태공원 끝까지 다녀오고,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느라 뒤처진 나는 중간쯤 의자에 앉아 쉬며 아내와 아들을 기다렸다.

기다리며 보는 호수엔 구름이 흘렀고, 쓸데없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나는 그늘에 숨어서도 땀을 흘리는데 호수에 몸을 담근 버드나무는 시원스레 하늘거렸다.

뜰에서 반짝이는 금모래 빛처럼 햇빛이 부서져 반짝이는 호수를 건너다보며 매미는 마치 엄마와 누나가 된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집에서 아들은 틈틈이 논문을 수정했다. 논문 마지막 심사 때 심사위원장 및 위원의 싸인을 받았으나 맞춤법 등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논문 지도교수에게 최종 검토를 받아 도서관에 제출해 인쇄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들 덕분에 학사출신인 내가 석사와 박사 논문 과정을 배운다.

이제 내가 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영어나 수학 대신 인생에 대한 지혜뿐이다.

아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현명하게 삶을 살도록 아내와 내가 알고 경험한 모든 것을 아들에게 전한다.

부끄럽지 않은 엄마와 아빠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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