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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y 08. 2023

책과 우연들

책 읽기 프로젝트 50 #45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좋은 책을 읽으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고, 작가에 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둘 다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김초엽 작가도 둘 다 해당하는 경우였다. 그의 장편인 <지구 끝의 온실>을 먼저 읽었고, 그 후 바로 친구가 추천해 주었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이렇게 멋진 SF소설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특별히 상상한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작가가 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화학을 전공하고 SF소설을 이렇게나 따뜻하게 쓰는 작가라니. 그러고 보니 글에서 이과적 지식과 문과적 감성이 함께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 다녀오면서 공항 서점에서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를 보았다. <책과 우연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은 나의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다. 여기서 나는 읽기가 어떻게 쓰기로 이어지는지, 내가 만난 책들이 쓰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해 말할 것이다. P.10


김초엽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읽기와 쓰기의 연관성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던 때의 이야기나, 화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던 그가 어떻게 SF 작가가 되었는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SF 작가답게 SF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도 들어있어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런 부분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어떤 것을 좋은 작품으로 보는지‘, 즉 미학적 평가의 기준이 둘 사이에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격문학에서는 인물의 내면, 인물 사이의 갈등, 인물의 변화에 더 주목한다면 SF에서는 인물과 세계의 갈등, 세계의 구조와 규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P.164


내게 조금 더 와닿았던 부분은 김초엽 작가가 화학을 전공하다가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는 소설가, 특히 SF 소설가의 길을 가게 되며 했던 고민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글쓰기 모임을 만들며 짧은 습작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에 관한 작법서도 꽤나 읽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작법을 적용해 가며 글을 썼고, 그사이 고민도 많이 했다.


글쓰기에 관한 작법서, 그리고 고민을 이야기하는 김초엽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지금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초등학생 때 쓰는 독후감이나, 일기장에 쓰는 글들을 옮겨놓은 정도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지금 브런치에 써둔 글 중 썩 마음에 든다고 할만한 게 2~3개는 될지 모르겠다. 그저 숙제처럼 써나갈 뿐, 발전은 없다고 느껴진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대목이었다. 책을 계속 읽다가 그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화학을 전공한 작가가 과학과 SF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며 그 내용보다는 작가의 태도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에게 과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근본적인 틀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 취향, 정체성, 혹은 글을 쓰는 습관까지도 말이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김초엽 작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당연히 이렇게 뛰어난 작가와 나를 동일선에 놓고 비교할 수 없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능하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나의 못난 부분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처럼 나에게도 내가 더 좋은 사람이라고 거짓말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데 나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작가들도 이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


귀여운 습관도 찾았다. 김초엽 작가는 여행지 책방에서 산 책 한 권을 여행지에서 다 읽고 오려고 한다고 한다. 여행지를 떠올리면 그때 읽은 책 속 이야기가 같이 떠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마치 정유미 배우가 여행지에 가면 향수를 하나 사서 그곳에서 쓰고 온단 이야기 같았다. 그 향기를 맡으면 자동으로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이나 느낌이 떠오르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읽은 책에 따라 여행이 풋풋한 첫사랑처럼 기억되기도 할 테고 추리소설처럼 기억되기도 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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