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lack Compan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창환 Oct 02. 2019

16. 이라크, 그린존 (11)

[ 센트럴, 확인 요망. C75 Liner, 남하 중인 이라크 군의 OPCOM 여부 확인. ]


노딩턴 대위의 물음에 센트럴은 즉답하지 못했다. 그들도 지금 아이린팀이 발견한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전략 정찰팀에서 아무 언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나 센트럴이나 작전 상황에 취해 못 본 것 같았다. 단순한 교신 착오로 인해 들어선 눈먼 아군들이길...


[ 센트럴, 확인 중. ]

'빌어먹을 놈들!'


노딩턴 대위는 즉각 터미널을 조작해 다가오는 4대의 이라크 군 트럭을 적성 불명을 뜻하는 노란색 마름모 표시로 변경했다. 이 상황에 통제받지 않고 달려오는 놈들은 일단 적으로 간주할 생각이었다. 높은 곳에 맞춰 움직이면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상황인지라 노딩턴 대위는 상황 통제를 끝까지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는 루 중위를 불러 적성 불명으로 표시한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가만히 보고 있던 루 중위는 입모양으로 K64를 흉내 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라는 뜻이었다. 노딩턴 대위는 곧장 통신 채널을 가동했다.


[ K-64, 아이린에서 통신 요청합니다. ]

[ 확인, 아이린. 전송하십시오. ]

[ 지금까지의 상황은 지켜보셨을 거라 판단됩니다. 센트럴에서 저 남하하는 친구들에게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번엔 은행의 도움을 빌어보고 싶군요. 저희에게 해주실 것이 있습니까? ]

[ K-64가 아이린에게, OPCOM-A 채널과는 별도로 가동 중인 저희 측 감시 체계에서 특이한 걸 잡았습니다. 4대가 요란하게 달려오는 게 수상해서 통신 감청을 실시했더니... 저 친구들, 이란 쪽 사람이더군요. ]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동된 걸 목격했다. 운송에 실패한 저쪽 그룹에게도 지금 수중에 들어온 장난감 상자는 몹시 중요한 물건이었던 셈이다. 이라크 군 내에 잠입해 있던 Sleeper Cell 이 깨어나서 지금 달려오고 있었다. 노딩턴 대위와 루 중위는 언덕을 급하게 넘어오고 있는 트럭을 보며 이를 깨물었다. 그린팀이 위험했다.


[ K-64, 이 정보를 토대로 센트럴에게 퇴각 작전을 입안해 주십시오. 전 당장 그린팀과 CAT팀을 저기서 후퇴시켜야겠습니다.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

[ 확인. 옵서버로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옵서버에겐 말 그대로 상황을 주시할 수 있는 권한만이 있을 뿐이지 작전 입안과 같은 명령권은 없었다. 그러나 CIA 잖은가... 지금 이 상황부터 저들은 아이린을 통해 OPCON 권한을 부여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OPCOM의 한 단계 아래의 권한을 갖지만 저들은 미국인이다. 혼란스러운 센트럴은 이 상황에서 개입할 은행의 권고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현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그린팀 차례였다. 말이 잘 나오려는 목을 가다듬고 노딩턴 대위는 통신 채널을 다시 개설했다. 안 좋은 소식을 전달해야만 하는 입장이라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 아이린, 그린팀에게. ]

[ 그린팀, 수신. 전달하라. ]

[ 정체불명의 소대 규모 그룹이 지상 루트를 통해 북서쪽에서 접근 중, 이상. ]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건 지휘관의 몫이었던가? 노딩턴 대위는 순간적으로 이렇게까지 나쁜 적이 있었는지 잠깐 떠올려 봤다. 원래 작전 계획은 수시로 변경되곤 했었지만 지금처럼 악화된 적은 없었다. 그린팀을 무사히 빼내 올 방법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지만 달려오고 있는 4대를 막지 못하면 귀환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릴 것 같았다.


[ ... 단단히 물렸구먼, 그렇지? ]


닥터 왓슨의 한마디엔 비장함을 넘어선 한탄이 담겨 있었고 그걸 듣는 이의 가슴을 와르르 무너뜨릴 만한 무게를 품고 있었다. 군인도 아닌 신분으로 전장을 헤쳐 나온 이들이 넘어왔을 죽음의 고비는 수없이 많았을 테고 노딩턴 대위는 그들만큼 생사의 문제를 놓고 발버둥 친 적은 없었다. 반대로 몇 번, 몇십 번을 반복해 죽음을 맞이하는 전우들을 보아왔다. 그건 저 밑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자괴감과 무력감에 시달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는 건 이들의 몫이었다.


[ 그린팀, 지상 이동 수단을 통해 알파 퇴각 지점까지... ]

[ 아냐, 못해. 부상자들은 고속 이탈을 견뎌낼 수 없다. 달리면서 전투하는 것보다는 토치카를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네. ]

[ 그린팀, 지원 병력인 AMF 팀 쪽으로 이동해합니다. 열원 정찰 결과 놈들은 40 명으로 이뤄진 그룹입니다. 그 자리에서 교전을 하는 것보다는 AMF 팀에게 유인해서 격멸하는 게 더 유익합니다. ]

[ 젠장, 내 말 못 들었나? 부상자들이 고속 이탈을 못 견딘다고! 제 아무리 치료 키트가 있더라도 쇼크에 빠지면 살아날 가능성이 낮아져! AMF 팀이나 빨리 유도해! 아까 그 하인드는 어디로 간 거야! ]

[ 귀환 한계점에 이르기 전에 복귀시켰습니다. 부르고 싶어도 이제 못 부릅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후퇴하십시오. ]

[ 빌어먹을, AK를 근거리에서 맞았어! 여긴 응급 혈액도 없는데 뭘 어떡하라는 거야! ]

[ 센트럴, 그린팀에게.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박사와 패키지의 확보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HIGHCOM에서는 확보된 자원에 대한 분석을 하달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확보된 자원들은 파괴되거나 죽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전진기지까지 어떻게든 이송 부탁드립니다. ]

[ ... 다들 우리 보고 죽으라고만 하는군. ]


닥터 왓슨의 말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사항이었다. 사령부에서 원하는 건 그린팀이 확보한 상자와 박사가 가지고 있을 적에 대한 정보였지 닥터 왓슨의 생존 여부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지키려면 닥터 왓슨의 반쪽 팀은 살아 있어야 했고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전투를 치르며 이동해야 했다. 저 밑에서 참담해하고 있을 닥터 왓슨 팀의 심정이 절절히 느껴졌다. 전략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라... 언제나 논리는 그럴듯했다. 한편으로는 상황을 제어하고 결과를 습득하기 위한 처사라는, 당연한 논리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 그린팀, 아이린입니다.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지금 접근 중인 녀석들은 이란 출신으로 또 다른 테러 조직으로 은행 측에서 의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 그리고? ]

[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저 친구들이 도착했을 때 상자와 박사를 놓고 또다시 한바탕 전투를 벌일 텐데 불행하게도 그린팀에겐 선제 공격권이 없습니다. ]

[ 음, 그거 참 안타깝군. 그래. ]

[ 더군다나 은행에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저기 달려오고 있는 친구들이 정말 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많이 부족합니다. 센트럴이나 제가 권고하는 이 후퇴는 저 친구들이 정말 적인지 알아보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적이라면 더 빨리 달려 내려올 겁니다. ]

[ ... 정보도 새고 있나? 허이고, 대단하구먼, 대단해. ]

[ OPCOM 체제가 그게 문제죠. 정보는 서로 공유되는데 정작 누가 참여한다는 건 늦게 공유되니까요. 많이 말할 것도 이제 없습니다. 5분 뒤면 북쪽으로부터 접근해 오는 놈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 우리가 무슨 윙어도 아니고 항상 뛰기만 하나... 빌어먹을. ]

[ 사격 후 기동. 전술의 기본이죠. 그린팀,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제가 도우려면 저놈들이 정말 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


노딩턴 대위는 솔직한 심정으로 다 털어놓다시피 통신을 취했다. 그린팀이 움직여 줘야 했다. 위험 지역을 벗어나야 했고 한참 날아오고 있는 AMF 팀과 조금이라도 가까워 줘야 전투를 제대로 벌일 수 있을 터였다. 화면 속의 닥터 왓슨은 손을 허리에 짚은 체 깊은 고민을 하다 오른손을 허공에 들고 휘휘 원을 그려 보였다. 노딩턴 대위와 루 중위는 동시에 박수를 쳤다.


[ 이봐, 그린팀. 이동은 하겠지만 그게 참 궁금하군. 그냥 달려오고 있는 놈들이랑 통화해 보고 전화 안 받으면 JDAM 떨구면 되잖아? 뭐가 이리 복잡해? ]

[ 저희가 미군이었다면 저렇게 맘 놓고 달려오는 친구들 자체가 없었겠죠. 왓슨 팀장님, 시대가 변했습니다. ]

[ 뭔가 이해가 되는군. 집결 포인트를 좀 알려 주겠나? 환자 분들은 잠재워서 달려가야겠군. ]


루 중위가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하고 있었던 터라 손놀림이 한결 더 빨랐다. 애초에 이 작전에 대해 연락을 취해서 맡게 한 게 루 중위 자신이었으니 사지로 변한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취해볼 터였을 거다. 노딩턴 대위는 상황을 다시 종합하기 위해 손 놓고 있던 지휘 통신망과 정보망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센트럴과 SATCOM 은 은행 측과 명확한 후퇴 루트 및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분주했다.


특히나 정보가 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은행 측이 OPCOM에 투입되려는 병력에 대해 강한 의심을 품고 있어 신경전이 통신 채널에서 가득했다. 정보가 샌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쨌든 상부에서 대처할 사항이고 지금 상황에서 풀어 나가려면 AMF 팀의 구성을 파악해야 했다. 확보 작전에만 신경 쓰느라 지원팀을 신경 못 썼는데 이번에 놓치면 정말 그린팀이나 CAT 팀, 멀쩡한 AMF 팀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 K64, 아이린에게 전달. ]

[ 확인, 아이린. ]

[ 이란 쪽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라크 군 차량을 타고 있는 저 병력이 자기네 소속인 건 맞는데 국경을 넘는 건... ]

[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

[ 아, 이젠 저것들을 그냥 날려 버리면 되겠군요? 이제 끝이군! ]

[ 그린팀은 계속 후퇴시키고 AMF 팀이 경고 후 날려 버리자고. 미니건으로 때려야겠어. ]

[ 확인, 아이린 1-2. 그린팀에게 전송하겠습니다. ]


마무리 짓기가 힘들지만 어찌 되었든 끝은 난다. 왓슨 팀장의 팀은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지만 어찌 되었든 기지로의 복귀를 위해 상황은 종결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달려오고 있는 위장한 적군을 잠재우고 나면 패키지와 박사 모두 귀환시킬 수 있다. 노딩턴 대위는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란에서 침투한 위장팀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정보를 받은 것처럼 그린팀의 방어 지점으로 정확하게 달려오고 있었고 반대로 AMF 팀은 그린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린팀이 작전 입안대로 AMF팀에게 합류하여 화력을 보강할 수 있다면 노딩턴 대위가 희망하는 좋은 결과는 곧 현실이 될 판이었다. 이제부터 정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좋은 결과는 휙 날아갈 테니까. 긴장되지만 여건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이라크, 그린존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