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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대위와 연합 전투 부대(JTFG, Joint Task Force Group) 3그룹은 계속해서 부여받은 작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정해진 스케줄과 웨이 포인트 대로 날아갔다. 한 번의 전투가 있었다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고 소모된 무장 또한 이런 상황을 대비해 예비되어 있는 보급단이 멀지만 권역 상에 있었다. 옛날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쓰였던 우주 왕복선에서 착안한 보급선이 제작되어 우주군 내부에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원래 우주왕복선은 지구와 궤도 간에 이착륙을 모두 염두에 둔 디자인이었고 위성을 포함한 각종 화물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기에 보급에 쓰이기엔 그만한 대안이 없었다. 기계 팔 대신 드론과 탄약, 화기를 적재하고 전투기 근처에 접근하면 드론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전투기 외부의 발사대와 내부 컨테이너에 적재해 주는 방식이었다.
[ 부기장, 3그룹에게 보급을 한번 해야 할 거 같은데... 좀 주선해 주겠나? ]
[ 확인. 근처에 있는 친구가... 보자. 양키 7... 와우, 이 친구 작전 나온 지 200시간이 넘었는데요? ]
[ 보급부대 놈들 연장 뛰는 거 한두 번 보나. 요청이나 해봐. ]
[ 알겠습니다. 양키 7, 양키 7. TACP-04에서 보급 요청. TACP-04에서 보급 요청. 들리나? ]
약간의 잡음이 낮게 깔리고 곧 누군가가 송신 버튼을 누른 듯 조용해졌다. 긴 한숨 뒤에 피곤에 찌든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양키 7, 확인. 암 레이스(Arm Race, 무장 보급)인가? ]
[ 그렇다, 작전 수행 중인 전투 그룹에 무장 보급이 필요하다. ]
[ 거리가 좀 먼 거 같은데... 우리가 여기 있는지 좀 오래돼서 말이지. 이쪽으로 좀 와주면 좋겠는데? ]
[ 확인, 대기하라... 3그룹, TACP-04에서 호출. ]
[ 확인, 3그룹. 뭔가? ]
[ 경로를 좀 바꿔서 무장을 채우고 가시죠. 멀지만 진행 방향 상에 보급단이 있습니다. ]
[ 확인, 대기해. 작전판 좀 봐야겠군. ]
루터 대위는 말 나온 김에 항법 디스플레이를 다시 한번 살폈다. 3차원 좌표 방식 대신 2차원으로 바꿔 대략적으로 남은 거리를 보니 앞으로 4시간은 더 이곳저곳을 날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선만 보고 있다가 최근 전투 기록이 있었던 정보 레이어를 불러오니 2군데에서 겹쳐졌다. 음... 하는 신음이 스스로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방금 있었던 전투 지역은 최초 조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급작스럽게 있었고 루터 대위의 경험상 72시간 내에 전투가 있었던 지역에선 거의 대부분 다시 적들이 출현하곤 했었다. 지구군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개미굴이 닫히지 않아 여전히 그 통로가 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3그룹 리더, TACP-04입니다. 솔리드 1(Soild 1). ]
아무래도 이번 순찰이 순탄하게 끝날 것 같지가 않은 예감에 루터 대위는 3그룹 리더에게 향하는 단독 통신 채널(Soild)을 요청했다. 쉽지 않아 보였다.
[ 지금 링크로 제가 보고 있는 거 보내겠습니다... 보이십니까, 리더? ]
[ 흠... 최근 정보인가? 들리는 곳에 저렇게 전투가 있었다는 건데... ]
[ 저희만 단독으로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저길 다 뚫은 다음에 복귀하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위에선 아직 뭐라고 하는 거 없나? ]
[ 없습니다. 변경도, 수정도, 아군도 없습니다. 그냥 날아가야 할 판인데요. ]
[ 뭔 생각이지...? 실수도 아닐 텐데. ]
[ 방금 전투는 최초 조우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
[ 그렇긴 하지. 하지만 머리 돌려서 돌아오라는 얘기 또한 없잖아. 가자고. 대신 좀 천천히 가고 지원 불러. 여기서 우리만 가다가 고립되지는 말자고. ]
[ 알겠습니다. 위에 말해보겠습니다. 일단 보급 쪽으로 가고요. ]
[ 그래, 그렇게 하지. ]
이 드넓은 공역에서 전투 지역이 아닌 곳을 다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항법 정보와 레이더 상의 아군 배치를 보면서 루터 대위는 이상함을 느꼈다. 순찰 라인이야 전투 발생 이전에도 다녔던 곳이고 날아갈 지역 또한 몇 번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평범한 곳이었다. 다만 대개의 경우 예상 못할 상황을 대비해 이렇게 순찰 중인 각각의 병력은 최소한 1:1 형식으로 지원이 가능하도록 서로 근접시키거나 지역을 중첩시켜놓곤 했었다. 2차원 좌표 방식에선 안 보였지만 3차원 표시 방식으로 돌려 각각의 웨이 포인트를 따라가니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전혀 안 가본, 그리고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물론 모든 지구군에서 완전히 분리된 지역을 날아가게 되어 있었다. 전투 임무가 아닌 지휘 통제 역할을 수행하는 루터 대위는 이게 정말 이상했다. 이렇게 된 작전은 사전 심의에 걸렸어야 한다. 이런 작전이 수행되기 전에 작성된 작전 파일의 내용은 AI와 사람의 조합이 된 참모단의 데이터 망에서 몇천, 몇만 번에 걸쳐 조회되고 검사하고 평가했을 터였다. 그 과정에서 잘못 작성되거나 각종 실수, 오류 등이 다 걸러진다. 그래야만 작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이 이해한다. 그 이전에 상식적으로 아군이 닿지 못할 곳에 탐사 드론은 커녕 사람부터 보낸다는 게 맞지 않다. 루터 대위가 가진 의문은 점점 의심으로 바뀌어 갔다.
[ TACP-04에서 SATCOM에게 요청. 지원 병력이 필요합니다. 이상. ]
[ SATCOM-A, 호출에 응답. 루터, 뭐가 필요하다고? ]
[ 지원 병력이요, 콜 중령님. 순찰 도는 곳에 블랙아웃 구역이 있다고는 말씀 안 하셨잖습니까. ]
[ 확인 중 이네. 블랙아웃이라니? 나도 처음 듣는 얘기인데. 자네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
[ 예? 잠시만요, 그룹 리더도 연결하겠습니다. ]
[ 콜 중령님. 3그룹 리더 로베르트 소령입니다. 뭡니까, 이게? ]
혼선이라니... 루터 대위는 짜증부터 올라왔다. 작전 파일을 누가 손댄 건지도 저 인간이 모르고 있는 건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화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실수가 없다고? 오류가 없었다고? 그럼 이건 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루터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 전투 그룹 3, 통제관 콜 이다. 지금 자네들의 비행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네. 딱 봐도 그 이상한 지역으로 자네들이 단독 진입한다는 계획이로군. 자네들도 알겠지만 교리대로라면 무인 정찰 먼저, 유인 작전은 그다음이지. 그렇기에 이런 작전을 만든 입안자부터 결제 라인에 있는 모두에게 어떻게 된 건지 해답을 요청해 둔 상황이다. 작전 계속 수행 여부에 대해서도 참모본부에 타진한 상태네. 일단 자네들은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해당 지역 앞에서 대기한다. 요청한 지원 병력은 내가 준비해서 곧 붙여주겠네. 알았나? 복창. ]
[ 3그룹 리더, 계속 임무 수행 후 문제의 지역에서 대기한다. 확인. ]
[ TACP-04, 계속 임무 수행 후 문제의 지역에서 3그룹과 대기한다. 확인. ]
[ 좋아. 루터, 로베르트. 눈을 크게 떠라. 이상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귀와 눈을 열고 생각을 빨리 해라. 내가 가르친 거 기억하고 위험한 짓 하지 마라. 곧 답을 주겠다. 이상. ]
[ 3그룹 리더, 알겠습니다. 아웃. ]
[ TACP-04, 확인. ]
뭔가 폭풍이 지나간 거 같은 느낌. 전투도 전투지만 이번 작전은 계속 뭔가 상황이 만들어졌다. 루터 대위는 이제 짜증보다는 걱정이 들었다. 순탄치가 않았다. 차라리 타격, 장거리 정찰 임무이고 그에 맞게 편대가 구성되었다면 전투가 있겠구나 하고 각오를 다지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데 지금은 임기응변을 요구하는 경우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작전 계획은 그냥 간다 말고 나머지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에 이제 다 하나씩 채워야 할 판이었다.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 부기장, 들었지? 우리가 다 체크해야 된다. 슈퍼 서치 모드로 바꿔. 나우. ]
[ 확인. 레이더 슈퍼 서치 모드로 전환. ]
[ 장거리는 네가 보고 중단거리는 내가 보지. 하나도 빠짐없이 마킹해. 필요하면 데이터 링크 열고. ]
[ 정숙성은 포기하는 건가요... ]
[ 일단 우리 주변에 뭐가 있는지부터 제대로 알자고. VAX 오는 건 그다음에 생각하고... ]
드물지만 VAX는 지구군이 주변에 뿌려 되는 전파를 마치 심해어가 빛이나 헤엄칠 때 나타나는 파형을 따라가듯 레이더의 전파를 추적해 오는 경우가 있었다. 루터 대위의 기체인 전자 전투 고속 기동기의 경우엔 일반적인 전투기보다 더 강력한 레이더와 중앙 처리 유닛 컴퓨터가 실려 있었다. 그런 성능을 지닌 레이더가 최대 출력에 해당하는 슈퍼 서치 모드로 전방위에 레이더 전파를 뿌려 될 경우 지구상의 생물 중 갈매기에 해당하는 크기를 가진 물체를 반경 300km 상에 모두 다 찾아낼 정도였다. 금속이든, 비금속이든 다 찾아낼 만큼 엄청나게 강력한 전파를 뿌리니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만 있으면 해석은 할 수 없어도 신호계에 큼지막한 신호를 남기게 된다. VAX는 그 신호를 역추적할 수 있을 만큼 전자전에도 특화되어 있었다.
[ 준비는 끝났고... 양키 7. TACP-04에서 다시 보급 요청. ]
[ 양키 7, 뭐 이리 오래 걸리나? 돌아간 줄 알았는데... ]
[ 20분 후 조우한다. 보급 목록은 지금 보내는 중. ]
[ 양키 7, 확인... 리스트 받았다. 20분 후 조우, 접속어는 노크노크노크. ]
[ TACP-04, 접속어는 노크노크노크... ]
[ 틀리지 말라고. 노크는 3번. 이상. ]
[ 기장님, 저거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노크 3번이라니요? ]
[ 200시간 동안 밖에 있었잖아... 상태야 뭐 최악이겠지. 얼른 끝내고 보내자고. ]
이래저래 문제점이 널려 있지만 일단 루터 대위는 머리를 돌려 양키 7이 있는 방위로 향했다. 3그룹보다 수직으로 1000미터 정도 높게 날면서 계속 레이더에 뭐가 잡히는지 들여다보았다. 우주 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고 가끔씩 옛날 위성의 잔해가 스크랩이라 표시되는 것 외엔 특별한 건 없었다. 얼른 보급이라도 마쳐야 하나라도 끝마친 기분이 들 것 같아 항속 속도를 좀 더 올려 가는 길을 재촉했다. 3그룹 리더는 자신의 편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일일이 돌아오는 날 선 질문과 반응을 잠재우느라 바빴다. 개인적인 친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루터 대위는 복귀하고 나면 이번 상황에 대해 로베트르 소령과 맥주 하나를 놓고 깊은 사후 평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키 7로 향하는 동안 루터 대위는 침묵 속에 생각만 가득히 하면서 비행을 이어 나갔다.
[ 기장님, 양키 7입니다. 이제 잡히네요. 주변은 깨끗해 보입니다. ]
[ 양키 7, TACP-04 다. 컨택. 접속어 노크노크노크. 보급 절차를 실시하라. ]
[ 양키 7, 육성 확인... 데이터 링크도... 확인. 2대씩 보내. 이쪽 드론이 몇 개 고장이라 제한이 있어. ]
[ 3그룹 리더, 확인. 블루, 빨리 가서 먼저 채워라. 델타는 그다음. 얼른 끝내자. ]
[ 블루 리더, 확인. 진입합니다. ]
[ 양키 7, 블루 편대를 확인했고... 그다음 놈들도 잡히는군. 천천히, 천천히 와. ]
루터 대위는 보급을 위해 진입하는 블루 편대를 따라 양키 7에게 접근했다. 피곤에 쩌들고 장시간 외부 유영을 하는 보급 부대의 악명이야 유명했다. 전선이 넓고 길어짐에 따라 지원부대의 처우가 점점 열악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지상을 벗어나 우주, 그리고 앵커 기지를 거점으로 하는 달 궤도까지 이르자 지원부대는 이제 거의 독립부대처럼 운용되어 일반 사기업처럼 변모해 갔다. 독자적으로 보급 자원을 가져와서는 지구-달 궤도 상에 시장처럼 자리 잡은 것이었다. 옛날 강철산을 쌓아놓고 보급을 하던 시절로 간 듯 지원부대들은 알아서 생존과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한편으로는 우주 전쟁을 위한 적응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인간의 감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먼저 가버린 면도 있었다. 양키 7처럼 아예 자신을 우주인, 혹은 외계인처럼 믿는 부류가 생겨나는가 하면 극단의 고요함에 잠긴 우주에 우주복도 없이 몸을 던지는 정신병에 걸리는 부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일반적인 사람의 영역은 아니었다. 저런 상태에 이르렀기에 군부에서는 지원 부대의 기계화, 로봇 부대의 도입, 무인화를 어느 부대보다 빨리 도입하려고 하지만 VAX 또한 기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쉽게 전환이 되지 못하고 인간이 갈려져 나가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앵커 기지로 복귀해서 가끔 정비창이든 식당이든 개인 숙소에서 보이는 지원 부대, 특히 저런 보급 기지에 소속된 인원은 외모에서부터 변화가 찾아온 듯 좀 기괴했다. 제복과 인간미가 있는 일반적인 지구군과는 달리 흉터 투성이에 각종 피어싱, 성형 수술을 한 이들이 가득한 곳이 유인 보급 기지 소속 병사들이었다. 루터 대위는 그런 보급 기지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 있기에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급 과정을 맨눈으로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이 짜증 가득한 작전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