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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68

삼국통일의 시대 13 ㅡ ('김유신'과 '김춘추' 2)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68

ㅡ 삼국통일의 시대 13 ㅡ ('김유신'과 '김춘추' 2)


어제 글에서 신라 왕족 계보를 살펴본 것처럼, '김유신'은 '김춘추'와 외가 쪽으로 7촌 관계였고, 후에는 서로 처남·매제, 장인·사위 관계가 된다.


'김춘추'(훗날 태종 무열왕)와 '선덕여왕'은 신라왕족으로, 외숙모와 조카관계였다. 따라서 선덕여왕은 김유신과도 혈연적으로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었다.


선덕여왕 출생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역사적 근거를 종합하면 58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김유신이 595년, 김춘추가 603년 출생이므로, 선덕여왕은 김유신보다 약 10세, 김춘추 보다는 약 20세 연상이다.


선덕여왕이 632년 즉위할 때, 김유신은 거의 40세에 가까웠고, 김춘추는 30세 초반이었다. 이때부터 두 인물은 신라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선덕여왕 총애와 기회를 받게 된다.


사실 김유신은 우리 역사상 존재감이 큰 위인이지만, 신라 정계에는 의외로 늦게 이름이 알려졌다. 삼국사기에서 김유신 열전 분량이 많은 것은, 그가 삼국통일 영웅으로 평가된 후 기록이 보강된 결과이다.


1. 김유신의 생애


김유신은 대부분 위인처럼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609년(15세)에 화랑이 된다. 그를 따르는 낭도를 '용화향도' (龍華香徒)라고 칭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유신은 612년(18세)에 보검을 들고 열박산(咽薄山)에 들어가 검술을 익히고, 화랑 지도자급인 ‘국선’에 임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김유신 활동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거의 없다. 삼국유사 설화 내용으로 추정하면, 화랑으로 수련하며 활발히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서 김유신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629년(35세) 8월 ‘낭비성 전투’이다. 김유신은 대장군 '용춘', 아버지 '김서현'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고, 아군 형세가 불리해지자 직접 적진에 뛰어들며 승리를 이끈다.


김유신은 적진에 뛰어들기 전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한다.


"내가 듣건대, 옷깃을 바루면 갑옷이 바르게 되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고 하니 내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겠다!"


이 경험은 훗날 김유신이 부하 장수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면서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즉, 김유신은 삼국사기상 18세 화랑 시절 이후, 35세 낭비성 전투 전까지 기록이 없고, 정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선덕여왕 즉위 후, 40세 무렵부터였다. 삼국통일의 위업은 65세에 백제를, 70세를 넘겨 고구려를 멸망시키면서 완성되었다.


결국 김유신도 강감찬, 권율처럼 대기만성형 인물로 볼 수 있다.


2. 김유신과 김춘추의 관계


김유신과 김춘추는 십 대 화랑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두 사람이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임신서기석'을 배경으로 만든 설정으로 추정된다.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1934년 경주 금곡리 석장사 터에서 발견된 신라 유물로, 신라 청소년들이 착한 일과 학문 수행을 맹세한 기록이다. 제작 시기는 552년(진흥왕) 또는 612년(진평왕)으로 추정되는데, 612년 기준 김유신과 맞지만 김춘추는 당시 9세에 불과했다.


즉,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할 때 김춘추는 어린 나이였고, 둘 사이가 친밀하게 교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유신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 관련 설화 역시 이 점을 뒷받침한다.


3. 김춘추 왕 만들기와 김유신의 역할


김유신은 이후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할 때까지 전략가로서, 즉 ‘킹메이커’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덕여왕 말기 ‘비담의 난’이 발생하자, 김유신과 김춘추가 이를 진압하고 신라왕실 실권을 장악한다.


선덕여왕 사후, 둘은 성골 마지막 인물인 '진덕여왕'을 왕으로 추대한다. 이는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성골이 완전히 사라져야 진골인 김춘추가 왕위를 이어도 저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덕여왕은 재위 8년 만에 후사 없이 사망하고, 김춘추는 신라 최초 진골 출신 왕으로 즉위한다.


진덕여왕 시기 신라는 백제 의자왕과 고구려 연개소문 등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김춘추가 외교와 정치로 위기를 극복한다.


이야기는 다음 3편에서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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