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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798
ㅡ 섹스와 진화 그리고 수컷의 무용지물화 ㅡ
짝짓기 때문에 죽음이 생겼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
사실 지구상 모든 생물이 암수로 나뉘어 짝짓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뒤 약 5억 년 동안, 생물은 암수 구별 없이 무성생식을 했습니다. 지금의 아메바처럼 짝짓기 없이 스스로를 둘로 나누어 번식하는 방식이죠.
무성생식 생물에게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똑같은 유전자를 그대로 복사하며 끝없이 살아갔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돌연변이로 암수가 구별된 생물이 등장 했습니다. 이들은 유전자를 서로 섞어 후손을 남기는 유성생식을 하게 되었죠. 문제는, 짝짓기를 해야만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한 생명체가 사명을 마치 면 소멸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체에 ‘죽음’이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단순한 생식 수단이었던 짝짓기는, 인간에 이르러서는 쾌락이 결합된 섹스가 됩니다. 되
영원불사에서 죽음을 얻은 대가가 너무 컸던 걸까요? 그래서 인간은 쾌락이라는 보상을 덧붙였는지도 모릅니다. ㅎㅎ
흥미롭게도, 쾌락을 목적으로 짝짓기를 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 '침팬지'와 '보노보'밖에 없습니다.
침팬지 암컷은 번식기가 아닐 때는 모든 수컷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컷이 ‘내 새끼’라고 믿게 만들어, 자신의 새끼를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번식기 에는 가장 강한 수컷과만 교미 합니다.
보노보는 더 흥미롭습니다. 섹스를 단순한 생식이 아닌 평화 유지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두 집단이 대치하면, 대표 수컷과 암컷이 나와 공개적으로 섹스를 하며 화해를 이끌어냅니다. 덕분에 보노보 집단은 폭력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침팬지는 대치하면 싸움과 살해로 끝내죠. 인간은 이 두 유전자를 모두 물려받아, 폭력성과 쾌락성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합니다. 그래서 수컷이 암컷 보다 더 크고 화려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엔 비애가 숨어 있습니다.
수컷은 본능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암컷과 교미해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 합니다. 인간 수컷의 ‘바람기’도 이 본능에서 비롯된 거죠(이 말 했다가 돌 맞을지도…ㅎㅎ).
그러나 암컷은 아무 수컷에게나 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양질’의 후손을 원하기 때문에, 강하고 건강한 수컷을 고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강함’의 기준도 달라졌지만, 수컷의 을(乙) 위치 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파리 수컷은 교미를 위해 암컷에게 벌레를 선물합니다. 큰 벌레일수록 교미 시간이 길어지죠. 그런데 큰 벌레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몸에서 진액을 짜내 작은 벌레를 예쁘게 포장해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끔은 속이 빈 ‘사기 선물’ 까지 등장합니다. 제비성향(?)의 수컷이라고 해야 할까요.
최근 읽은 <성의 자연사>라는 책에선 더 충격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진화가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면 수컷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따개비 수컷은 몸이 작아져 기생충처럼 암컷 몸에 붙어 생식기만 남았습니다.
수컷 사마귀는 첫 교미가 곧 마지막 식사… 암컷에게 잡아먹힙니다.
아귀 수컷은 이빨을 박아 암컷과 한 몸이 되어 평생 기생합니다.
수컷 벌은 여왕벌과 교미 직후 몸이 폭발하며 생식기를 남기고 죽습니다.
호랑거미와 각다귀 수컷도 교미 도중 암컷에게 잡아먹힙니다.
아텔로푸스 속 개구리 수컷은 교미 중 6개월 동안 암컷에 달라붙어 다른 수컷을 막습니다. 일종의 ‘정조대’ 역할이죠.
두더지와 들다람쥐 수컷은 분비물로 암컷 생식기를 막아버립니다.
이 모든 진화의 끝은, 결국 수컷이 없어도 되는 처녀생식입니다. 현재 약 1,000종이 이런 방식 으로 번식합니다.
만약 인간이 환경에 완벽히 적응해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인간 수컷도 무용지물이 될까요?
그래도 저는 6개월 동안 매달려 있는 아텔로푸스 속 개구리가, 수컷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ㅎㅎ
결국 ‘성’과 ‘진화’를 들여다보면, 인간사회에서 심각해 보이는
많은 일들이 의외로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 초롱 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