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2 - 중국 북방 유목민족 유래와 전개 과정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13
ㅡ 고려거란전쟁 2 ㅡ
(중국 북방 유목민족 유래와 전개 과정)
이번 편은 글이 조금 길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꼭 몇 번이고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나라 어디 역사 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다.
원래는 바로 <거란 1차 침략과 서희 외교담판>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중국 북방 유목민족 흐름이다.
거란, 여진, 몽골….
우리 역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이 민족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고 어떤 관계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고려거란전쟁> 이야기도 반쪽짜리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길더라도 이 북방 유목민족 큰 흐름을 먼저 정리해 보려고 한다.
5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5분이 앞으로 이어질 고려 이야기 전체를 훨씬 흥미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중국 북방 유목민족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할 것이다.
사실 나 역시 학창 시절 이 부분이 제일 헷갈렸다.
흉노족, 돌궐족, 선비족, 거란족, 말갈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이 많은 이름들이 교과서에는 계속 등장하는데 서로 어떤 관계 인지 명확하게 설명을 들은 기억 거의 없었다. 그 어떤 역사 선생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대부분 시대 순서로 외우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북방 유목 민족 흐름을 큰 줄기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중국 북방에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유목민족이 활동하였다.
이들은 말을 이용한 뛰어난 기동력 바탕으로 농경중심국가였던 중원 한족정권을 끊임없이 위협하였다.
사실 동아시아 역사는 중원 농경 국가와 북방 유목민족 긴장관계 속에서 전개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관계를 이해해야 우리 역사 속 수많은 외침 배경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역사를 생각할 때 항상 한족이 중심 되어 중국을 지배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북방 유목민족과 중원 농경국가 사이 경쟁과 충돌 속에서 중국 정치구조와 군사체제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역사에는 다양한 민족이 함께 참여한 왕조도 많다.
예를 들어 명나라 세운 '주원장'은 한족출신 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역사 전체는 여러 민족이 뒤섞여 형성된 역사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럼 북방 유목민족 하나하나씩 자세히 알아 가 보자.
1. 흉노족
기원전 4세기 무렵 몽골고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는 강력한 유목 기마세력이 등장한다.
중국 기록에서는 이들을 '흉노' (匈奴)라 부른다. '흉측한 노비'라는 뜻이다. 원래 이름이 아니라 중국 한족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중원국가들에게 흉노는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
중국 최초 통일국가를 세운
진시황 역시 북방 유목민족 침입 막기 위해 만리장성 방어 체계를 강화하였다. 이는 진시황 이전부터 흉노족을 방어하기 위해 쌓아 올린 성들을 진시황이 이어가며 재축성 한 것이었다.
흉노는 이후 BC 4세기 '한무제' 시대에 크게 약화된다.
일부 집단은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이들이 훗날 유럽역사에 등장하는 '훈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북쪽에 남은 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거란족'과 '몽골족' 선조가 되었다.
2. 돌궐족
흉노세력이 약화된 이후 몽골고원과 알타이산맥 일대에서는 또 다른 강력한 유목민족이 등장한다. 이들이 바로 '돌궐족'이다.
돌궐은 오늘날 '튀르크'(터키)계통 민족초기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6세기 무렵 몽골초원,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 민족은 중국 중원을 계속 괴롭히다 한족에 쫓겨 유럽 쪽으로 가서 훈족후예들과 함께 '오스만튀르크'라는 엄청난 세력 이 된다. 중세유럽 때 중국대륙 못지않은 영토를 거느린 대제국을 건설한다. '오스만튀르크'라고는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3. 선비족
'선비'(鮮卑) 모용씨는 서기 3세기 경 지금 만주 쪽에서 활동한 북방 유목민족으로서 '선비산'(鮮卑山) 근거지로 하였기 때문에 '선비족'이라 일컫는다.
흉노 이후 북방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선비족은 여러 부족이 모여 형성된 연합체였다.
3세기 이후 선비계 세력은 중국 북부에서 여러 국가를 세우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대표적으로 '북위'가 선비계 왕조였다.
선비족과 우리 민족과 관계는 서기 285년경 선비족이 '부여'를 공격하여 결국 부여왕 '의려'가 자살하는 사태까지 이르고, 부여 세력이 매우 약화되었다. 이 약화된 부여에서 '주몽'이 뛰쳐나와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니 바로 '고구려'이다.
선비족 대 고구려 관계를 보면 오랜 기간 동안 애증관계였다.
선비족이 정착한 영토가 고구려와 한나라 중간에 있던 탓에 고구려를 도우면 고구려가 이기고 한나라를 도우면 한나라가 이기는 식으로 양국 승패를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다.
고구려 역사에 선비족이 처음 등장한 것은 BC 9년으로 '삼국유사' 유리왕본기에 <선비족이 고구려 국경을 자주 침공하자, 고구려가 계략을 꾸며 힘센 선비족을 제압해 속국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선비족 힘이 강해지면 고구려를 침입하여 괴롭히기도 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에 이르면 선비족은 고구려 토벌대상이 되기도 했다.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후연'이 선비족이 세운 나라였다. 후연은 지금 중국 '북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선비족은 부침을 겪다가 서기 5세기에 북위' 왕조를 세워 중국 북부를 140여 년 동안이나 통치했다.
또한 선비족은 한족화를 열심히 추진했다. 중국 내륙으로 옮겨온 선비족은 점차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한족과 융합되었다.
지금 일부역사가 들은 중국 수, 당 지배층도 선비족이었다고 주장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비족 일부는 중국한족에 동화되었고, 일부는 만주지역에 남아 이후 '말갈'과 '여진'계통 민족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선비족'이라는 명칭 때문에 '흉노족'과 달리 우리에게 훨씬 점잖은 이미지로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같은 북방 유목민족이었다.
4. 거란족
'거란'은 한자로 ‘계단(契丹)’이라 쓰는데, 원래 이름은 ‘키타이’로, ‘칼날’이라는 뜻이다.
거란은 서기 10세기경에 거란을 명실상부한 북아시아 강대국으로 만든 위대한 영웅 '야율아보기'가 존재했다. 우리는 잘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지만 무협소설에는 자주 등장하고 거란족에게는 '칭기즈칸' 못지않은 인물이다.
우리 역사에도 거란은 일찍부터 등장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거란족을 공격하여 그들이 납치한 고구려 백성 1만 명을 구출해 온 일(392년 9월)과 거란족이 세운 나라로 추정되는 비려를 쳐부수고 역시 붙잡혀 간 고구려 백성들을 구출해 낸 일(395년)은 대왕 대표적인 업적들로 꼽힌다.
거란과 우리나라와의 직접적인 관계는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킨 것이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며 동북아 질서를 크게 변화시켰다. 이후 야율아보기는 '요나라'를 건국해 황제에 올랐다.
사실 요나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년 동안 황제국을 칭하며 중국대륙을 송나라와 이분하고 있었다.
우리 상식과는 전혀 다르게 당시 강자는 요나라였고 송나라는 어찌 보면 요나라 속국이었다. 송나라는 해마다 엄청난 조공을 요나라에 바치고 버티면서 문치주의 국가 송나라는 평화를 유지했다.
요나라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북방유목민족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는 송의 엄청난 조공에 그냥 만족해했다.
괜히 고려가 송과 친하게 지내고 배후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고려를 3차례 침입하여 고려에게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번 시리즈 주제인,
- 1차 침략 → 서희의 외교 담판
- 2차 침략 → 양규 장군 활약
- 3차 침략 →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 사건들이 우리 한반도 역사를 바꾸게 된 거대한 '고려거란전쟁'
이었다.
5. '말갈족'과 '여진족'
우리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갈'은 만주일대에 살던 여러 부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문헌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렸다.
- 주나라 시대 → 숙신, 식신
- 한나라 시대 → 읍루
- 위진남북조 → 물길
- 수·당 → 말갈
수ㆍ당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여진족'으로 성장하게 된다.
말갈 집단은 '고구려'와 '발해'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고구려와 발해 주민 대부분이 '말갈' 계통이었다고 볼 수 있다.
12세기 초 '완안 아골타'가 등장하면서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우고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당시 요나라는 송의 조공에 취해 지배층이 무사안일해지고 향락만 추구하고 있었다. 금은 이런 무기력해진 요나라를 송과 합심하여 멸망시킨다.
송은 요나라를 멸망시키면 편해질 줄 알고 금나라가 요나라 치는데 협력했다. 그러나 송에게는 요나라보다 더 무섭게 갑질하는 금나라가 나타난 것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금은 요와 다르게 고려에 별 관심을 쏟지 않았다.
'고려거란전쟁' 결과를 보고 고려 저력을 느꼈을 것이다.
금은 송나라만 집중공략해 송나라 황제까지 포로로 잡고 송 수도까지 점령한다. 송은 남쪽으로 쫓겨가 남송을 다시 건국한다.
금은 남송까지 점령하려 했지만 그때 몽골초원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무서운 북방 유목민족이 등장한다.
6. 몽골의 등장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유목제국이 등장한다.
바로 '칭기즈칸'이 이끈 몽골세력이다.
몽골제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 역시 몽골의 9차례 침략을 받게 되었고
약 80년 동안 원나라 영향 아래 놓인다.
이를 '원간섭기 시대'라 부른다. 몽골침략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7. 이후의 역사
몽골제국이 약화된 이후 '만주' 지역에서는 여진세력이 다시 성장한다. 이때부터는 '만주족'이라 부른다
이 여진세력은 훗날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운다. 후에 '청'으로 황제국이라 칭하며 '조선'과도 충돌하게 된다.
이 전쟁이 바로 조선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전쟁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명나라 후방 조선을 제압하고, 명나라까지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한 북방 유목민족 두 번째 제국을 만들어 냈다.
8. 결론
중국 북방 유목민족 움직임은 중국역사뿐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발해·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북방 유목민족과 관계는 항상 중요한 역사적 변수였다.
중국 한족국가가 한반도국가를 침략한 사례는 수·당 시대의 고구려와 백제뿐이었다.
그 외 대부분의 침략은 북방 유목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중국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이해는 한반도역사와 외교· 전쟁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오늘 글에서는 이 내용을 자세히 정리했다. 글이 다소 길지만
여러 번 꼼꼼히 읽어보면서 핵심 흐름을 잡아두길 권한다.
이어서 거란 1차 침략과 서희 외교담판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