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직책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이다 ㅡ

초롱초롱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10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10


ㅡ 권력은 직책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이다 ㅡ

(검찰개혁 법 국회 통과 이후)


검찰개혁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검찰개혁의 완성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집중되어 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어떤 기관이 어떤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가 핵심 쟁점이었다.


중요한 논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권력은 권한에서 나온다>는 전제다.


이 전제는 틀리지 않다. 다만 충분하지 않다.


권한은 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지만, 권력이 실제로 얼마나 강해지고 오래 지속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권한을 가진 조직이라도 어떤 조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력이 강화되고, 어떤 조직은 그렇지 않다.


이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검찰이 강한가 가 아니라,

왜 어떤 조직은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을 축적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단순한 지속이 아니다.


사건처리 경험과 판단기준, 조직 내부 관행과 의사결정 방식처럼 시간이 쌓아 올린 요소들은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축적과 연속성은 단순한 습관이나 관행을 넘어, 조직 내 실질적 권력과 영향력을 구축하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이 구조는 낯선 것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보더라도, 권력의 중심은 항상 특정조직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승만 시기에는 경찰이,

박정희와 전두환 시기에는 군과 정보기관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권한의 크기가 아니다. <정권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권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군과 정보기관이 정치전면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 검찰이 차지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권력의 중심은 특정기관 성격이 아니라 <지속성과 축적이 가능한 구조 위에서 형성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더 설명력이 높다.


이러한 구조는 훨씬 이전에도 존재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에서 수령은 명목상 최고권력이었지만, 실제 행정을 움직인 것은 아전이었다.

수령은 임기를 마치고 떠났지만, 아전은 자리를 지키며 대대로 행정연속성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분명하다.


<권력은 직책에서 나오기보다, 자리를 지키며 축적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방행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치시대 선출권력은 정책방향을 제시하지만 임기라는 한계를 가진다. 반면 행정조직은 지속성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


그 결과 행정과 정책은 점차 조직 안정성과 내부논리에 맞게만 조정되어 가고, 주민요구는 형식적으로만 반영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될 때 행정은 주민중심이 아니라 조직중심 관료주의 행태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검찰개혁 법 통과 이후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권한의 재배분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권력구조까지 바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개혁이 반복해서 한계를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한은 조정되었지만 권력이 축적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을 시간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다.


권력은 제도적 권한, 조직 지속성

외부통제, 사회적 정당성 등 이 요소들이 결합되어 형성된다.


다만 중요한 점은 시간은 이 모든 요소를 축적하고 결합시키는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권한이 있어도 축적되지 않으면 영향력은 제한되고, 정당성이 있어도 지속되지 않으면 구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개혁방향은 보다 분명해진다.


첫째, 권한은 계속 분산되어야 한다.


둘째, 외부통제와 책임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권력이 한 조직 내부에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순환 실질적 확대, 사건배당의 투명성 강화,

조직 간 역할의 구조적 분산과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들은 단순한 행정개선이 아니라, 권력이 한 곳에 쌓이는 시간을 분해하는 제도적 장치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되며 스스로를 재생산할 때 더 위험해진다.


검찰개혁 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권한을 나누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권력이 축적되는 방식 자체를 바꿀 것인가?


선택에 따라 이번 개혁 성패는 갈릴 것이다.


<권력은 직책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이다.>


이 문장은 결론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권력을 나누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권력이 쌓이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있는가?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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