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과 '정종'시대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30
ㅡ 대외적 평화시기와 고려문벌 귀족시대 2 ㅡ
( '덕종'과 '정종'시대)
********************
먼저 한 가지 짚고 가겠습니다.
제가 고려군주를 ‘황제’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잘못된 표현이란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사 연재를 시작할 때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고려는 초기부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내부적으로는 스스로를 황제국으로 인식 하고 ‘황제’ 칭호 사용했습니다. 다만 '송'이나 '거란' 등 주변국가와 외교관계에서 ‘왕’을 칭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은 엄밀한 학술논문 이라기보다는 <대중을 위한 역사 칼럼이자 해석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려의 황제국적 성격을 반영해 ‘황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 공식 역사서에서는 ‘고려 왕’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다소 혼란을 느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역사를 보다 보면 유난히 조용한 시기가 있다. 전쟁도 없고, 반란도 없으며 기록마저 담담하다.
내가 역사 글을 쓰면서 조금은 허전한감을 느끼기도 할 때이다. 그러나 이런 시기를 '아무 일도 없던 시대'로 치부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변화를 놓치게 된다.
고려의 '덕종·정종'시대가 바로 그런 시기다.
고려거란전쟁 이후, 고려에는 평화가 시작된다
고려는 '귀주대첩' 이후 대외적으로 안정된 국면에 들어섰다.
이를 이끈 고려 '현종'은 전란을 수습한 뒤 유교적 정치질서를 강화하고 중앙집권체제 정비했다.
이 시기 고려는 단순히 전쟁을 피한 것이 아니라 국가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1. 현종 아들 셋, 모두 왕이 되다
현종 이후 고려정치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그의 세 아들, < 덕종, 정종, 문종>이 모두 황제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당시 고려황실과 귀족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형제간 큰 충돌 없이 황위가 계승된 점은 고려초기 황위쟁탈 불안정성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즉, 이 시기는 황권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질서 속에서 운영되던 시기였다.
2. 황실 근친혼, 권력을 묶는 또 하나의 방식
이 시기 고려황실을 이해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근친혼'이다.
고려 '덕종'은 5명 왕비 가운데 두 명이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이는 현대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 고려황실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혼인방식이었다.
이러한 근친혼은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고려황실 혈통의 <순수성 유지, 외부 귀족가문으로의 권력 유출 방지, 특정 가문과의 결속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제도적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고려황실 혼인은 곧 권력구조였다.
3. 평화 속에서 재편된 권력질서
고려 대외적 안정이 이어지면서 정치중심은 점차 변해갔다.
전쟁시기에는 군공이 중요했지만,
평화기에는 행정과 학문이 중심이 된다.
그 결과 문신관료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문벌귀족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귀족들 '부패'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시기는 질서가 안정되는 동시 권력이 특정집단으로 집중되기 시작한 단계였다.
4. '덕종', 짧지만 방향을 유지한 군주
고려 덕종은 재위 3년으로 아주 짧았지만, 고려황실의 정책적 흐름을 이어가는 역할을 했다.
덕종은 3년이란 짧은 기간에 아래와 같은 공적을 남겼다.
1) 거란에 대한 강경 외교유지
2) 인재선발 기반 확대시도
3) 천리장성 축조 시작
특히 '천리장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전쟁 이후 고려가 선택한 장기적 안보전략 상징이었다.
이처럼 덕종은 짧지만 방향을 잇는 황제였다.
5. '정종', 조용하지만 단단한 통치
고려 '정종'은 흔히 조용한 군주로 평가되지만, 그의 통치는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다.
즉위 초 거란압박에도 강경하게 대응했고, 군사를 유지하면서 내정정비에 집중했다.
그의 대표적 업적은 아래와 같다.
1) 노비종모법시행(업적은 아님)
2) 과거 응시자격 정비
3) 도량형 통일
이러한 정책들은 급진적 개혁은 아니었지만 사회질서를 정리하는 실질적 조치였다.
또한 사병문제를 인식하고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국가 권력 구조를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이처럼 정종은 '눈에 띄지 않지만 체제를 다듬은 황제'였다.
6. '문종치세'로 이어지는 준비된 시대
덕종과 정종의 특이한 점은 형제에게 황제자리를 물러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종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 아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 고려 '문종'에게 황위를 넘긴다.
이 선택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능력과 안정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이후 고려중기 황금기로 이어진다.
덕종과 정종시대는 분명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1) 왕실내부 결속강화 (근친혼)
2) 안정된 왕위계승 구조
3) 문벌귀족 중심권력 형성
4) 군사집단 상대적 소외
이러한 요소들은 당장 충돌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긴장을 축적시켰다.
그리고 그 긴장은 결국 '무신정변'으로 이어지게 된다.
7. 맺으며
덕종과 정종 시대는 조용한 시기가 아니라 조용히 구조가 바뀌던 시기였다.
황실은 혼인으로 권력을 묶었고,
형제는 갈등 없이 왕위이었으며,
귀족은 점차 국가를 장악해 갔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서 다음 시대를 바꿀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역사는 언제나 큰 사건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조용한 시기 속에서 더 중요한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어서 고려 최대황금기 '문종'시대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