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망각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27
ㅡ 나라영웅, 그러나 가족재앙 ㅡ (친일과 망각)
광복절이 지나고 나서, 우연히 유튜브에서 '안중근' 의사 아들 '안준생'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이하 이토)를 저격하고 순국한 순간부터, 안중근 가족은 지옥 같은 삶을 시작했다. 장남은 일본순사가 건넨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고, 남은 가족들은 집을 전전하며 거지처럼 살아야 했다.
둘째 아들 '안준생'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나는 나라의 재앙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영웅이었습니다.”>
안준생은 결국 조선총독 '미나미' 양자가 되어 일제 선전도구가 되었다.
또한 안중생은 이토아들을 찾아가 사죄했고, 아버지 의거를 부정 하며 친일활동을 이어갔다.
이를 보다 못한 김구는 “민족 반역자로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김구 또한 안중근 가족이 겪은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다.
그런 안준생은 항변했다.
“난 안중근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내 가족을 위해 살고자 했을 뿐 입니다.”
해방이후 안중생은 미국으로 떠났고 안중생 아들은 미국에서 심장 전문의로 활동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안중생은 굶주림 속에서 형을 잃은 영웅의 아들이었지만, ‘친일의 대가’로 가족은 살아 남았고, 자녀들은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안준생과 그 가족을 ‘민족 반역자’로만 단정할 수 있을까?
'윤봉길' 의사 가족사 역시 아주 안타깝다.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감행하고 스물셋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은 유서에서 자식들에게 “너희도 조선을 위한 투사가 되어라”라고 남겼다.
그러나 두 살배기 아들은 곧 영양 실조로 죽었고, 남은 가족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장남은 평범한 공직자로 살았고, 손녀 윤주경은 정치에 입문했지만 친일청산과는 거리가 먼 행보로 논란을 불러왔다.
안중근과 윤봉길,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위해 죽음을 택했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국가 없는 시대’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국가가 세워 졌음에도, 그들 가족을 제대로 책임져 주었는가?>
지난 7월 17일 제70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역설적으로, 해방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통념이 유효함을 증거해준다.
대통령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아직도 이 부조리가 청산되지 못했다는 고백이자 선언인 셈이다.
이어 대통령은 강조했다.
<“보훈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 예우 이자 국가책임과 의무입니다. 국가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왜 민주정부가 다섯 차례 나 이어졌음에도 여전히 이런 선언을 반복해야 하는가?
그것은 해방직후 근본적 실패, 곧 <친일청산 좌절> 때문이다.
프랑스는 4년 나치점령기에 거의 1만명 부역자를 레지스탕스가 사적으로 처단했고, 공식재판으로 6천명 넘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 다. 그러나 프랑스는 적어도 매국 행위에 대한 국가적 기준은 세웠다.
대한민국은 달랐다.
36년 일제강점기를 겪고도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한 헌법기관 '반민특위'는 이승만정권에 의해 친일경찰들에 의해 해체되었고, 당시 친일파 처벌은 사실상 전무 했다.
이후 오히려 친일세력은 반공을 기치로 들고 기득권을 차지했고, 그 유산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진정한 정의로운 국가는, 국가적 영웅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남겨진 가족 고통을 함께 짊어 지는 공동체이다.>
만약 친일 후손이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이 여전히 가난과 고통 속에 산다면, 그 나라가 과연 정의로운가?
이재명 대통령의 추념사가 다짐이 아니라 결산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간략히 비교한 자료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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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독립군 할아버지, 저는 배를 곯아요."
-2008년 광복절 특집, 시사인 기사 제목
[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中]
☞ 직업 없는 사람 60%이상
☞ 봉급생활자 10%이하
☞ 중졸 이하 학력 55% 이상
☞ 두 집 중 한 집에 중병 환자
☞ 직업 있는 사람 40% 중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종 경비원
☞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신
[안중근 후손]
☞ 안중근 일가 : 40여명이 독립운동이 한 독립운동 명가(名家)
☞ 부인 김아려 : 중국 상하이에서 사망
☞ 광복후 가족 대부분 김구와 활동. 김구 암살된 후, 이승만 정권서 탄압
☞ 사촌동생 안경근 : 4·19혁명 ‘민주구국동지회’ 결성. 박정희 정권서 7년 투옥
☞ 조카 안진생 : 전두환 정권 때 강제 해직, 충격으로 쓰려져 투병하다 사망
“과거 우리는 안중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왜놈에게 죽어야 했는데, 광복 뒤에는 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의 피해는 여전하다.”
-중국으로 돌아간 사촌에게 안진생이 보낸 편지.
☞ 한국 친일정권들 피해 망명 : 손녀 안현생(미국), 사촌 안공근 일가(북한)
[신채호 후손]
☞ 아들 신수범 :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살해 위협, 전국 떠돌며 넝마주이로 살다가 이승만 하야 후 복귀.
☞ 직계 자손들 : 정부에 의해 집안 재산 모두 강탈당함.(이유: 대한민국 정부는 신채호 선생이 일제가 강제 실시한 호적 정리를 거부하고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했다는 이유로 한국인 국적 부여 않고, 무국적자로 정리)
[친일파 후손]
☞ 이근택(을사오적) - 증손자 이상우(공주대 총장)
☞ 민영휘 (일제조선최대갑부)
- 막내아들 장남 민병도 (한국은행 총재)
☞ 이병무 (정미7적) - 증손자 이진 (국무총리비서실장, 환경부차관, 웅진그룹부회장)
☞ 민병석 (경술국적) - 차남 민복기 (5~6대 대법원장) - 민복기 차남 민경택 (서울지법 판사)
☞ 이해승 (일제후작) -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 서울호텔 회장 겸 동원 회장)
☞ 이완용 (친일파 보스) - 증손자 이윤형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 김연수 (중추원 참의) - 아들 김상준 차남 김삼협 (16대 국무총리)
☞ 최남선 (중추원 참의) - 장남 최한웅 (서울대 의대 소아감염학) - 맏손자 (피부과 전문의)
☞ 문명기 (중추원 참의) - 맏손자 문태준 (7~10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남평문씨 대종회장)
☞ 현준호 (중추원 참의) - 손자 현양래 (현우실업 대표) - 아들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역임),
둘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홍진기 (일제강점기 판사)- 법무부·내무부 장관, 중앙일보 회장 역임) - 딸 홍라희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아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 홍석현 외조부 김신석 (중추원 참의)
☞ 방응모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조선일보 사장) - 증손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 김성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동아일보 설립자) - 손자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
☞ 이병도 (조선사편수회) - 손자 이장무 (서울대 총장), 손자 이건무 (문화재청장)
☞ 박정희 (일본 만주국 소위) - 딸 박근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출처: 대학생민족문제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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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