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 인간 그리고 제도문제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42
ㅡ 나는 사형집행 전 과정을 보았다. ㅡ
(사형집행, 인간 그리고 제도문제)
요즘 나는 유튜브에서 압축된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본다.
예전에 본 작품들이지만 줄거리를 떠올리고 감동을 다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런 빠른 전환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원본영화를 보면 지루함을 느껴 차분히 보기가 힘들다. 이 점은 상당한 문제점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이상 본 영화들만 골라서 보고 있다.
어제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크게 될 놈' 과 '홀리데이'다. 두 작품 모두 한국교도소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완성도와 현실성은 확연히 달랐다.
'홀리데이'는 '지강헌 탈출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허황된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남미의 갱스터 영화 같았고, 최민수가 장발로 교도소 부소장 역을 맡은 모습은 민망하기까지 했다. 내겐 망작으로 남았다.
반면 '크게 될 놈'은 실화를 바탕으로 전라도 목포 근처 섬마을 모자이야기를 그렸다. 까막눈 엄마와 사형수가 된 아들의 서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특히 모자 역을 맡은 '김해숙'과 '손호준' 연기는 진한 감동을 전했다. 전라도 사투리도, 교도소 묘사도 현실적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비교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내 첫 직장이 '교도관'이었기 때문 이다.
내가 대학생으로는 만학도 대학 3학년 (28세)일때 고시준비하다 결혼하게 되었고, 생계를 위해 우선적으로 교도관 시험을 봤다.
그 당시 마침 지강헌사건 직후라 교도관증원이 대규모 이뤄졌고, 나는 수학이 없는 교도관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고, 광주교도소에 발령받았다.
그 시절 광주교도소는 아주 낡고 열악했다. 겨울이면 창문 대신 비닐로 덮은 틈새로 찬바람이 몰아쳤고, 연탄난로 불빛에 의지해 밤을 지새웠다.
그 혹독한 겨울새벽 살을 베는 추위에 떨다보면 잠든 재소자들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교도관 시절, 평생 다시는 보기 힘든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크게 될놈'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그날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오늘은 여러 번 올린 바 있지만 다시 다듬고 정리해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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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사형집행, 인간 그리고 제도문제 ㅡ
나는 30여 년 전, 직접 사형집행 현장에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뒤 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형 폐지론자가 되었다.
때는 1990년대 초.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교도소는 조폭, 각종 범죄자 및 운동권 학생들까지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교도소라 하면 흔히 음습하고 무서운 공간을 떠올린다. 실제로 범죄자들이 모인 곳이니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안에서 지내보니 그곳 역시 제약 은 많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살아 가는 또 다른 사회였다.
광주교도소에는 공장만 해도 열 개 남짓 있었다. 재소자들은 아침마다 정해진 작업장으로 가서 하루를 보내고, 오후 해가 지기 전, 모두 자기 사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원칙적으로 구치소는 미결수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재소자), 교도소는 기결수(형이 확정된 수형자)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당시 광주교도소는 오래된 시설 이라 구치소와 교도소가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지금은 최신식 교도소로 신축 하여 옯겼다.)
'사형수'는 형이 확정되어도 원칙적으로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에 남는다. 확정판결을 받고도 늘 손에는 가죽수갑을 찬 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보내며 불안 속에서 산다.
내가 근무하던 당시에도 '광주 교도소'에는 두 명의 사형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10년 가까이 형 집행을 미룬 채 살아가고 있었다. 보통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기수로 감형되곤 했지만, 당시 시대는 달랐다.
1988년 집권한 노태우정권은 정치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1989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했고, 그 본보기로 전국적으로 사형집행을 강행했다.
'클게 될 놈' 영화 주인공 손호준도 이 당시에 사형수로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실화라고 하니 광주교도소는 아니였지만 나랑 교도소라는 한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교도관 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근무를 했다. 다시 군대에 온 느낌이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화창한 봄날이었다는 것만은 선명하다.
오전 10시 무렵, 갑자기 모든 재소자를 사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비상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폭동이라도 난 줄 알고 긴장 했는데, 고참 한 분이 다가와 내게 담담히 말했다.
“자네, 사형집행 본 적 없지?
평생 보기 힘든 일이니, 한 번쯤 봐 두는 것도 괜찮을 거야.”
사람이 죽는 장면을 직접 보라는 말에 망설였지만, 호기심과 직업적 본능이 발걸음을 사형수가 있는 '미결사' 쪽으로 향하게 했다.
미결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건장한 교도관 둘이 체구 작은 사형수를 양쪽에서 끼고 나오고 있었다.
'크게 될 놈'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사형수를 사형집행하기 위해 부를 때는 '면회'왔다고 한다.
미결사를 나오면 갈림길이 있다.
면회소와...
그들이 향한 길 끝에는 교도소 구석, 외딴 섬처럼 홀로 서 있는 하얀 건물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형장이었다.
평소 우리도 무섭다고 그 근처에 잘 가지 않았고, 사형집행도 오랫동안 하지않아 주위 풀도 무성해 뭔가 음산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두 교도관이 면회장 가는 길이 아닌 길로 방향을 틀자 사형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사형수 눈은 허공에 고정된 채, 발걸음은 땅에서 붕 떠 있는 듯 했다. 그를 끌고 가는 교도관들 얼굴에도 저승사자 냉혹함보다는 착잡함과 안타까움 어려 있었다.
나는 사형수와 교도관 얼굴을 보고 착잡해진 마음으로 그들 뒤를 따랐다.
사형장에 가까워지자, 사형수의 뺨에 다시 혈색이 돌았다. 그리고 뜻 모를 냉소가 번졌다.
사형수는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 허공을 향해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날따라 하늘은 너무도 푸르고, 봄바람은 왜그리 포근했던지...
사형장은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 으로 붐비고 있었다. 검사, 기자, 목사, 검시관, 교도소장까지 모두 가 재판장 같은 높은 단위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교도관들도 그 주위에 쭉 둘러서 있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본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형수는 도르레가 달린 작은 나무판자 위에 앉혀졌고, 손과 몸통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사형집행은 철저히 분담되었다.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담당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명을 직접 빼앗았다는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집행을 맡은 교도관들에게는 그날 상당한 수당이 나오고 그 돈은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그날 저녁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신다고 했다.
'교도소 소장'이 사형수 죄목을 조목조목 읽었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산으로 유인해 돌로 쳐 죽인 뒤 유기해버린 너무 잔인한 사건이었다.
순간 ‘죽어도 싼 놈’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곧 사형수가 담담하게 모든 것을 인정하는 태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도소 소장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형수는 처음엔 “없다”고 했으나, 소장이 재차 권유하자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해봐야 무슨 소용 있나요. 어차피 적지도 않을 거잖아요.”
그러자 소장이 교도관에게 “적을 준비하라”고 지시했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사형수는 차분히 유언을 남겼다. 죽기 몇 분 전, 적는 것을 걱정하는 그 침착함과 냉정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동안 교도소에서 모아둔 돈 50만 원 중 10만 원은 내게 면회를 와준 작은엄마께, 10만 원씩은 두 동생들에게, 나머지 20만 원은 불우이웃돕기에 써 주시오. 그리고 내 사형이 마지막 되어서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따뜻했다.
잠시 후 목사가 마지막 예배를 권했다. 사형수는 처음에는 거부 했지만,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목사님이 나 때문에 오셨는데, 헛걸음 하실 필요 없으니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고 가시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목사님이 사형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가 끝난 후, 곧 두 교도관이 나와서 흑두건을 씌우고 몸을 번데기 애벌레처럼 꽁꽁 묶었다.
그리고 검은장막 속으로 그가 앉은 도르레 달린 나무 판자는 사라졌다.
잠시 후 “됐어?”라는 말, 그리고 “오케이”라는 대답. 마지막으로 “덜컹―” 하는 소리.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방금 전까지 숨 쉬고 말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죄인으로,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로, 그러나 동시에 한 인간으로.
사형집행을 바라보며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이 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왜 이렇게 끝나야 했는지 묻게 되었다.
그날 저녁, 우리도 교도소 앞 허름한 식당에서 말없이 막걸리만 기울였다. 사형을 직접 집행한 교도관들은 아마 더 깊은 고통 속에서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30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마다 생각은 다르다. 잔혹한 범죄가 벌어질 때, 나조차 흔들린다.
하지만 과연 사형제도가 강력범죄 막는 데 효과가 있는가?
단지 분노의 해소를 위해 법이 허가한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상념이 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합법적’ 사형을 당했다.
조선시대 당쟁과 권력투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 심지어 조금 앞선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만약 내가 10분 뒤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내가 본 사형수처럼 과연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형집행을 여러 번 참관한 고참 교도관들 말에의하면 오히려 안 그럴 것 같은 사형수가 더 발악 하고 집착한다고 한다.
그러한 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거 아닐까?
나는 차라리 끝까지 저주와 악담 쏟아내며 가는 것이 더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사형수 처럼 체념한 듯 담담히 웃으며 떠나는 것도 한 방식일 것이다.
사형집행 기억은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확신하게 되었다.
<사형은 없어져야 한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이 가장 먼저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한다.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교도관들에게 마음 속 깊이 애정을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