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내게 허락된 단 하나의 남자 혹은 여자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43

ㅡ 세상에서 내게 허락된 단 하나의 남자 혹은 여자 ㅡ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사춘기'(思春期)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성장의 문턱입니다. 신체적으로는 이차 성징이 나타나고, 정신적으로는 자아의식이 높아지며, 심신이 성숙기로 접어드는 시기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말하는 '四春期'란 무엇일까요?


공자는 마흔을 두고 '不惑'(불혹)

이라 했습니다.


“마흔이면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감정 또한 절제할 수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 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돌이켜보면, 제 사십은 '불혹'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미혹' 속에서 방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즉 십대의 思春期처럼 여러가지 면에서 '四春期'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예순을 훌쩍 넘어 '耳順'

(이순)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공자'가 오늘 날을 살았다면 아마 불혹의 나이를 사십이 아니라 육십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마흔'을 넘기면서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그 무렵 ‘동창찾기 다모임’ 같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지금처럼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밴드가 없었던 시절, 카페는 제게 유일한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최근 옛 글들을 다시 들춰보다가, 마흔 그 무렵에 썼던 글들을 발견 했습니다.


제목은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였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우습기도 하고, 또 그만큼 진지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사십대에 썼지만 문제는 지금이 점 점 더 심각 해지고 있습니다.


2025년 9월 4일 방송된 채널A 퀴즈쇼 ‘브레인 아카데미’에서 법률 전문가 양소영 변호사가 “기혼자 3명 중 1명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를 들어 봤냐”고 언급했습니다.


이 통계가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불륜이 거의 일상화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이런 글들이 잘 써지지 않으니, 그때 글이라도 정리해 두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정리해 올리려 합니다


마흔무렵의 '초롱초롱박철홍'은 이런 생각을 품으며 살았답니다.^^


*********************


ㅡ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ㅡ


“사랑에 전부를 걸지 마.

지나고 나면 사랑도 부질없는 짓이야.”


고 '이은주'씨가 영화 '주홍글씨' 에서 남긴 대사입니다.


사랑마저 부질없다면, 우리 생 에서 부질없지 않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반대로 조용필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이 외로운 것은 전부를 걸기 때문이지, 그래서 외로운 것이야.”


사랑은 그토록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미 임자있는 이에게 찾아온 사랑은, 우리는 흔히 ‘바람’이나 ‘불륜’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정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본 적 있습니다.


“불륜과 로맨스의 정체성을 구분하기란, 한 나라 대통령 되기보다 어렵다.”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한 남자의 아내가 이런 말도 했다고 하지요.


“당신과 사랑이 이제는 너무 시시해졌어.”


사랑과 열정, 그리고 부부 관계의 냉혹한 이중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단 하나의 남자, 혹은 여자를 허락받았으면서도, 때로는 마음속에서 다른 이를 꿈꾸곤 합니다.


이것을 '외도'라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인간적 사랑의 흔들림이라 해야 할까요?


만약 그런 꿈을 꾼다는 것 때문에 돌을 맞아야 한다면, 저는 아마 날마다 돌을 맞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결국 유전자에 의해 촉발된 화학작용 일종이다.”


우리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랑조차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의 반응일 뿐이며, 아무리 길어야 3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참 삭막해졌습니다.


과학이 그렇게 증명한다 해도, 인간의 사랑은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미묘하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도, 습관처럼 사랑에 인색해지는 인간.>


우리는 그렇게 사랑과 무심 사이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만약 세상에서 허락된 단 하나의 사람을 두고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여주인공은 폭발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가정을 택합니다.

단 3일 간의 사랑을 목숨만큼 소중하다 여겼지만, 그런 사랑은 가정을 위해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남편곁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주인공 선택은 단순히 남편 때문만은 아니였을 겁니다.

가정, 자식, 그리고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자각까지, 수많은 이유가 그녀를 붙잡았겠지요.


남편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맞이하면서야 아내가 곁에 남아준 것에 고마움을 고백 합니다.


또한 여자의 그 선택을 존중하며 아무 말없이 떠나간 남자도 멋있었습니다.


소설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 였을까요?


이처럼 사랑 앞에서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부도덕하다 손가락질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늦게라도 찾아온 사랑에 감사하며 그 감정 을 따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돌을 맞아야 하는 일>

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다만 이미 세상에서 허락받은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 은 누구도 피할 수 없겠지만요.


솔직히 제 자신에게도 정답은 없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마흔무렵 내 맘 속은 늘 흔들려왔습니다.


허락된 단 하나의 인연 속에서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것은 죄 일까요, 아니면 인간본성 일까요?


아직도 저는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질문의 답을 붙잡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답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두 편의 시로 마무리 합니다.


‘마음은 칼날로 세워도

부처도 스승도 보이지 않는 자리,

새삼 무엇을 죽이리?

측은한 아내를?

더 측은한 어린 것을?

이제 중년이 된 옛 연인을?’


- 복거일,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깨끗한 들깨 중에서 -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에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가서야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중에서 -


ㅡ 초롱박철홍 ㅡ

keyword
이전 23화나는 실제로 사형집행 전 과정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