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배낭여행 이후 다시 찾는 벨렝탑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을지 궁금했다. 오전이니 18년 전 엄청나게 강렬한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됐던 붉은 석양의 모습을 보진 못 하겠지만, 여전히 설렌다.
피게이라 광장 맞은 편에서 15번 트램으로 35분 정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걷거나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늘 그렇듯 우리는 두리번 거리며 천천히 걷는다.
마치 여인이 드레스를 입은 것 같다 하여 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고상한 애칭이 있는 벨렝탑은 고상한 애칭의 이미지와는 다른 역할을 수행했다. 스페인 출신 수호성인 성 빈센트를 기리기 위해 16세기 마누엘 1세에 의해 지어진, 작은 요새와 같은 이 건축물이 왜 탑이라 명명되었는지 궁금한데, 이후 벨렝탑의 주 임무는 방어 요새가 됐다.
1층 감옥, 2층 포대, 3층 왕의 거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벨렝탑에는 정치범이 수용됐다고 하는데, 정치범이 주로 反정권 집단 임을 감안하면 정치범과 왕의 거실이 동일 건물에 있었다는 게 특이하다.
이곳 역시 수용인원의 한계로 다리 앞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적정인원씩 배분하여 입장시킨다. 탑의 출입구는 다리 끝 부분을 들어 올려 문을 닫음으로써 탑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저 바이올린 버스커 자리 한번 기가 막히게 잡았다.
가운데 아래 안쪽은 개방되지 않았는데, 벨렝탑이 요새와 감옥으로 사용됐었다고 하니, 감옥과 함께 고문 시설 등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탑의 2층에 포진된 대포들. 모두 17문의 대포가 방렬되어 있다. 대포 크기와 포신 길이를 보고 사거리가 궁금했다.
유럽여행을 다녀 본 경험자들에겐 익숙하겠지만, 城과 왕궁을 비롯해 성당이나 수도원 등 유럽의 古건물엔 통로가 비좁은 나선형 계단이 많다. 어지간한 체형의 한 사람도 오르내리기 버거운 그런 나선형 계단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신기한 궁금증 셋.
첫째, 계단을 돌로 만들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곳도 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공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둘째,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위에 물품들이 있는 경우도 많은데, 대체 그런 것들은 어찌 운반했는지.
셋째, 좁디 좁은 계단에서 오르내리는 사람이 마주쳤을 때 교행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나선형 계단이 많을 경우 일방통행으로 지정할 수도 있겠지만, 왕궁이나 큰 수도원을 제외하곤 복수의 나선형 계단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 세 번째 궁금증을 현재의 벨렝탑은 해결하고 있다. 각 층의 계단과 연결되는 문 위에 신호등을 설치하여 오르내리는 걸 통제한다.
일반 신호등과 같은 색으로 표시한다. 녹색 화살표가 향하는 방향으로만 통행이 가능하다. 녹색 화살표 밑 숫자는 통행 가능 시간이다. 현재 나타내는 시그널은 앞으로 1분 7초 동안 계단은 올라갈 수만 있다. 1분 7초 후에는 벨소리와 함께 ↓화살표가 녹색으로 바뀐다. 내려가려면 현재 ↓화살표가 녹색↓화살표로 바뀌길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없었을 그 옛날 방식의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2001년 석양의 벨렝탑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낮의 벨렝탑은 다소 밋밋했지만, 이곳이 한때 리스본에 드나드는 모든 함선들의 출항을 관리 감독하며 세관의 역할까지 도맡은 게이트 웨이 역할과 함께 방어 요새로서의 위상까지 누린 요지 임을 간과해선 안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