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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호랑이 Jul 12. 2017

백수가 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완전히 멈추었을 때 나에게 생기는 변화

Hydepark, London, England 에서 촬영한 백조와 아이들


"그 감각을 처음 접했던 시절"

마음이 평온해지면 그동안 놓쳐왔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며 느끼게 된다. '백수가 되면 겪게 되는 감정 변화'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전부터 줄곧 내 옆에 있어왔던 것들이다. 사물과 그 모양들 그리고 소리와 냄새에 민감해지면서 때로는 그 감각을 처음 접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머릿속에서 마구 솟구쳐 오르는 궁금증들이 생겨난다. 그 궁금증들을 꺼내어 되새겨 보면 내가 어렸을 적 가졌던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는 너무 철부지 없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하며 괜스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 첫 만남과 그때의 분위기"

'어린 왕자'에서는 장미가 다 같은 장미가 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린 왕자는 수많은 장미를 바라보면서 'B612'에 홀로 남아있는 자신의 장미를 생각한다. 


이전의 나에게 에스프레소에서 느껴지는 것은 '쓰다', '허세', '싸다', '메뉴판 가장 위쪽에 있지만 단 한 번도 시켜보지 않은 메뉴'였다. London에 머물면서 아침마다 Airbnb 주인집 아주머니가 따라주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그 첫 만남과 그때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London 의 아침, 나는 사방이 유리로 된 그리고 가든이 보이는 주방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는 아주 작고 귀여운 에스프레소 잔과 함께 나에게 에스프레소의 첫 만남을 선사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마시게 된 에스프레소. 더 이상 에스프레소는 값이 싸지만 맛이 쓰고 양이 적어서 메뉴 꼭대기에 있음에도 한 번도 시켜보지 않은 메뉴가 아니었다. 이제 '에스프레소'라는 글자를 보면 'London', '아침', '유리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그윽한 향기', '아기 손가락만 들어갈 것 같은 작은 커피잔'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줄지어 흘러나오면서 '평온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내 자신에게 조차도 가면을 쓰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London에서 느꼈던 나는 결코 한국에서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편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살면서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제스처와 반응이 나올 때도 있었다. 조금은 낯설지만 그동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 나는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다. 그때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에스프레소'처럼 그때의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느껴지는 연쇄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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