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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Jan 04. 2018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평화

내 삶의 적폐 청산, 당신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가는가.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겐 좋은 일만이 가득하길 바라지만

2018년 1월 아침 우리에게는 또다시 가슴 아픈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제 다섯 살. 한참 어리광을 부리며 사랑을 받았을 나이의 고준희 양이
벌써 몇 달 전 유기된 상태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부모로 인해 버려지거나 학대당한 여러 아이들을 

이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준희.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잊혀지고 사라지는 죄없는 어린이들을.


세상엔 별별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아동학대로 인한 치사사건은

매번 몇몇 인간 같지 않은 부모들, 

그들이 얼마나 나쁜 인간이었는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끝이 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사건들의 시작, 

오줌을 가리지 못했다거나, 음식 투정을 한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을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기에

이것이 정말 개인의 일탈일 뿐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수없이 강조한다. 주변에서 신고를 잘 해야 한다거나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거나 가정폭력의 신고 시스템을 잘 갖추어야 한다고 

여러 대안을 내놓지만 번번이 일어나는 안타까운 희생은

 본질적인 고민이 빠져있음을 반증한다.


내가 상담실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모두 아이와 잘 지내고 싶어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용기를 낸 부모들이다. 

사랑이 적어서인가. 아니다. 때때로 사랑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잘해주고 싶지만 형편이 어렵고 이해하고 싶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의 행동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난감해진 부모들은 매번 어렵지 않게 폭력을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아주 침착하게 돌이켜보면 

우리는 갈등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서로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대안을 찾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기보다 

힘 있는 사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의 결정에 따라 

약한 이들이 희생하고 억울함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왔다. 

그것이 예의고, 규범이며, 성실하고 근면한 것이라고 강조되었던 군사문화,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전쟁을 경험하고 

일제 강점기를 지나오며 받았던 모든 교육과 문화 전반의 영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갈등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서로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대안을 찾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기보다 
힘 있는 사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의 결정에 따라 
약한 이들이 희생하고 억울함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왔다.



아이들의 동심에 좌파를 운운해야 하는가. '쑥쑥 우리나라가 자란다.'


아이들이 통일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에 인공기가 들어갔다며 좌파교육을 운운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그려낸 그림 조차에도 

어른들은 적과 동지를 나눈다. 

그리고 더 힘센 사람이 되어 더 약한 사람을 반드시 무찔러야 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함께 살려고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은

매우 불온한 사상임을 강조한다. 

비단 아이들의 그림일 뿐임에도 말이다. 아직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몇 년만에 남북한이 서로 인사를 했다. 

며칠에 한 번씩 반복되던 핵전쟁의 위협,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 담담해져 버린 전쟁의 두려움은 

어쩌면 정치의 문제를 지나 우리 삶의 일상에 까지 섬세하게 스며들었다. 

강해져야 한다. 권력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리고 약한 것은 실패하는 것이며 

규범에서 어긋나는 개인의 겉멋 든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폭력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어쩌면 전쟁은 휴전선에서 일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 자녀 사이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해다. 2018년. 우리는 다시 아무도 가보지 못한 평화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촛불 혁명을 

우리 손에 든 양초와 종이컵과 핫팩으로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가 이루어내야 하는 평화 역시 우리 손에 달려있다.

 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생각,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약자의 목소리. 

그럼에도 우린 가족이고 함께 살며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천륜이 맺어준 인연이다. 

어떻게 평화할 것인가. 우린 이 숙제를 우리 가정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는 평화. 그 길이 열리고 있다.


우린 기억해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실상 지금 그 낯선 땅에도 누군가의 오빠, 형제, 사촌들이 살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역사를 지닌, 우리와는 전혀 다른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폭력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평화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를.

 여전히 우리 곁에는 작은 희망의 촛불이 필요하다. 


친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친부로부터 폭행당했던 아이. 

그리고 그 작은 영혼이 묻히고 나서 태연하게 건담을 조립했다고

 SNS에 기쁜 웃음을 표현하며 그들만의 가족여행을 떠나는 그 개인이,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좌파라 이름 붙이고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그 그림을 그렸을 어린이가 받을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 사회가, 

마음 아프게 교차하는 2018년 새 아침.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달라도 존중하며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 

'자녀로 인해 갈등이 심해지고 해결방법이 막막하다 여겨질 때 

쉽게 폭압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무마시키고자 하는 습관적인 폭력에서 벗어나 

도움을 청하고 평화를 배워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달라도
존중하며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 
자녀로 인해 갈등이 심해지고 해결방법이 막막하다 여겨질 때 
쉽게 폭압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무마시키고자 하는
습관적인 폭력에서 벗어나 
도움을 청하고 평화를 배워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년, 그 아름다운 촛불 파도를 기억해보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화야 말로 세상에 

다시없을 길을 열어가리라 확신한다. 

그토록 눈부신 삶의 평화가 

우리 가정에도 우리 아픈 민족에게도 

빛을 비추는 한 해가 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




* 지역신문 기고 칼럼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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