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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Dec 27. 2024

마리의 편지

사회적 관심 2 - 다양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여행하기

마리에게 다시 오랜만에 편지가 왔을 때 나는 내심 웃고 있었다. 

오랜 인연에 천천히 알게 되는... 마리의 스타일에 이제 좀 익숙해졌달까. 


창밖으로 보는 것보다 가서 만져볼 수도 있잖아. 기차에서 내려서...

지난번 기차 안에서 만났을 때 속삭였던 내 말에

마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은 꽤 단호해 보였으나

헤어질 때 언젠가는 이렇게 편지를 받게 되리라 예상했었다.

무척 호기심이 강한 그녀가 무작정 기차 안에서 두리번거리는 것만으로 만족할리 없으니.


짐작이 맞았다. 

시간은 좀 많이 흘렀지만 그녀는 내게 친구인양 엽서를 몇 장 보내왔다.

처음엔 기차에서 내린 플랫폼에서 어색하게 찍은 사진. 

가방 하나를 들고 내리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처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때로 툭툭. 밀려나기도 했는데

그것조차도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늘 자신의 감정과 생각 속에서만 살아가던 마리에겐 사실 제일 걱정하던 것이었을 텐데

실제 타인이 나를 밀치고, 내가 어디론가 밀려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툭. 툭. 털고 나도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정말. 매우. 바쁜 사람들인 것 같더라고. 이해되었다고.

그냥 마리는 자신이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여행가방을 들고 플랫폼에 혼자 서 있는 

그 자체가 꽤나 으쓱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론 꽤 자주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내왔다. 

시골길, 내겐 평범해 보이는 집, 간판, 가게들...


꼭 편지에 '넌 이런 거 본 적 있어?'라는 말을 덧붙이며
이상한 장난감이든, 문방구의 불량식품이든,

소품가게의 반짝이는 작은 액세서리든... 

 사진들을 붙여오곤 했다. 

하여간... 특이한 걸 무지 좋아하네...


때때로 부럽기도 했지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녀가 보내주는 다양한 사진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하자 싶어 가끔 편지가 오면 보이는 곳에 두고 여기는 어딜까 어땠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나는 마리가 아름다운 풍광이 흐르는 유명한 여행지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그녀는 자주 시골의 재래시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손때 뭍은 작은 소품들을 찍어 보내주었다. 


오래된 시계,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 만화경 같은

오랜 공을 들여 만드는 소품가게를 두리번거리기도 했고

손자 손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웃는 할아버지

다 커서 집에 잘 오지 않는 아들 이야기를 하는 아줌마를 따라가기도 했다고도 하고

말도 통하지 않던 고집불통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분의 시계와 그릇들을 팔겠다고 좌판을 깔았다는 가난해 보이는 소년의 사진도 있었는데 

때때로 거긴 한국이 아닌 꽤 먼 나라의 이국적인 시장인 듯도 했고

그래서 위험한 사람들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잔소리도 해주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호기심이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은 더 깊어지고 때때로 들리는 웃음소리는 무척 밝아서

참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걷고 구경하고 신기해하는 마리의 편지를 받는 것이

내게도 큰 즐거움이자 일상의 휴식이었다. 


그녀가 보내온 편지들을 모아 보고 있으면

꽤나 사소한 것들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래도록 손때 묻은 물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사진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가는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참 신기하지 않냐고...


마리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

그 사이를 여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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