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뭘 도울 수 있을까요?

넋두리 다이어리 27

by 리쌩전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상의 호흡으로 돌아오면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실 정상 속도로 돌아오는 중인데, 느려지고 있다는 것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게 맞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삶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기에 지금 있는 위치보다 방향성과 가속도가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벡터와 가속도. 고작 고등학교 때 2년 정도 배운 물리 개념 몇 개 가지고 참 오래도 써먹는다 싶기도 하다.


요사이 좀 이상한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일상에서 당연히 하던 일들을 깜빡깜빡하곤 했다.


1.

치약으로 세수를 할 뻔 했다. 바디샴푸로 머리를 감는다거나, 그 반대의 일은 종종 있었다. 제형도 비슷하고 패키지 형태도 유사하니까 넋놓고 있다보면 헷갈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약을 손바닥에 짜서 얼굴로 가져갈뻔했던 건 조금 너무했다. 다행히 얼굴에 대진 않았다. 손바닥에 놓고 힘을 주려고 했을 때 깨달았다. 바로 치약통에 다시 넣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어디가 헷갈린거지?


2.

클라이언트 행사가 끝나고 고맙게도 같이 일하는 분이 집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차를 얻어탔다. 어디까지 가세요? 라는 말에 주소로 대답했다. 당연히 입에서 나오는대로 집 주소로. 심지어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방에서 후암동으로 넘어왔는데, 집에 거의 다 와서 내비게이션을 보고 깨달았다. 집주소를 잘못말한 것이다. 그냥 잘못말한게 아니라, 한 8년 전까지 살았던 첫번째 집 주소를 이야기했다. 그집을 딱히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도 꽤 지났고, 바로 직전 집도 아니고 전전 집이었고 이제 그 골목을 지나갈 일도 없었다. 주소를 쓸 일은 당연히 없었다. 깨닫고 나조차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거의 다 왔길래 길을 알려주면서 집 앞까지 오긴 했지만 (짐이 많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왜 그 주소가 갑자기 튀어나왔지?


3.

생각나는 건 위에 두 가지가 전부다. 사실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쓰고 보니까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민했다. 좀 더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어내볼까?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그것도 이상하다. 내가 겪은 일을 쓰려고 했는데 왜 지어내서 쓸 생각을 했을까. 거짓말을 왜? 사실 왜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은 거겠지. 그냥 그런 거겠지.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문득 기분이 차가워진다. 냉정해진다고 할까? 멍청한 짓을 하고 난 뒤에 냉정해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래도 착 가라앉게 되는 마음이 있다. 나 자신을 좀 더 멀리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보다 몸집이 큰 탓에,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봐야하겠지만.


여튼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감각이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혹시나 내가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더 해보고 싶다는 느낌. 결국 내가 쓸모 있는 곳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기업들의 마케팅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또 방향성을 제안하고 그것으로 일을 함께 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최근 이런 저런 일들이 늘어나고 사람들도 더 생겨나면서 많이 복잡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꾸만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단순해지면 또 복잡해지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인 것이다.


어딘가 한 곳에 고여있다보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우물 안 개구리가 문제인 건,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 탓이다. 개구리가 무슨 죄겠어. 그럼 결국 내가 있는 곳이 점점 깊게 땅이 패이고 벽이 단단해지기 전에 자꾸 이동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건 나아지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당연한 방식일테다.


나는 그것을 좀 더 소모적인 것, 활용적인 것, 내가 누군가에게 소비되는 방식으로 구현되길 바란다. 자꾸만 자라서 뭔가를 갉아야지만 하는 설치류의 치아처럼. 기왕 쓸 거라면 좋은 곳에 잘 쓰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묻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다. 제가 뭔가 도울 일이 좀 있을까요?

어딘가 기웃거리기 전에 먼저 말하고 본다. 찾아와주시면 고맙고요. 언제나 환영이고요. 그래야 저도 좀 더 당연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건강해질 것 같아서요, 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