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찍었다. 듣기 좋게 장수사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진이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다는 할머니는 얼마 전에 크게 아프셨고, 자녀들은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참에 할머니의 영정사진도 찍기로 했다. 본인에게는 마지막까지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이 나이쯤 되어 곱게 입고 카메라 앞에 앉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사진의 용도를 짐작하신다.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아마 아셨을 것이다.
요즘 일과는 어떠세요?
오늘을 묻는 질문에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시간을 거슬러서 당신의 지난 삶을 되짚어간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당신의 모습은 언제였는지, 지나고 보니 참 큰 갈림길이었던 그때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어린 시절까지 불러낸 이야기는 방향을 바꾸어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향한다. 지금에도 당신을 설레게 하는 순간은 무엇인지.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는지. 한 장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어색하게 앉은 낯선 공간의 경험 말고, 지난 시간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그리고.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한 장의 사진으로 인사해야 한다면, 어떤 인상을 주고 싶으세요?
질문에 대한 답이 몇 장의 표정으로 남고, 당신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마지막 한 장을 고른 후, 어떤 주름을 남기고 어떤 흔적을 지울 것인가 고민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니까, 당신과 내가 만든 이 얼굴이 남아서 당신에 대한 기억이 된다. 남은 자들에게 보내는 긴 인사의 표정.
예전 모델이 되어주셨던 분의 부고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왔던 분인데 나는 선거용 포스터 촬영 때문에 만났었다. 젊어서부터 지역에서 성실하게 활동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써 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험한 시간들을 버티고 이기면서 마침내 지역 정치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들었다. 몰랐지만, 내가 사진을 찍었던 무렵에도 이미 병세가 있으셨던 모양이다. 혹시 촬영했던 사진 중에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것이 있을까 물어보는 전화였다. 종일 외부 촬영 중이라 저녁에 찾아보고 전해드리겠다고 답했는데 장례식의 사진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어서 다른 사진을 쓰시겠다고 했다.
다음날 사진 한 장을 프린트해서 그의 빈소를 찾았다. 영정사진 자리에는 선거 포스터로 썼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힘이 실리도록 어깨를 살짝 돌리고, 인자하되 당당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은 사람. 시민의 답답함을 귀기울여 듣고 힘있게 해결해줄 것 같은 얼굴, 내가 주문한 표정이었다.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보일 수 있는 표정으로 고른 한 장이었다.
안타까웠다.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면 나는 다른 사진을 주었을 텐데. 선거기간 그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를 전해 들었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악수를 청했는데, 몇몇은 그런 그를 무시할 좋은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 일부러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악수를 거절했다고 했다. 조롱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의 마음속 표정은 어땠을까 상상하니 화가 치밀었다. 정치인으로 어쩔 수 없이 단련된 표정을 지었겠지만, 더 이상 무엇도 눈치 볼 것 없고 뒷일을 걱정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는 과연 그 표정이었을까? 불편부당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는 고집과 다 마쳤다는 후련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마음에 들었지만 선거용으로 어울리지 않아 묻어두었던 그 사진을 유족에게 전했다. 세상에게 빚진 것 없는 그 표정을 그렇게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내 할머니는 아흔을 넘겨 돌아가셨다. 노년의 20년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의 외출은 동네 노인정이 대부분이었다. 명절을 제외하면 노인정에서 또래의 노인 몇 분과 둘러앉아 화투를 치시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일가친척부터 여섯 자녀와 십수 명 손자 손녀의 지인들까지 장례식장은 3일 내내 붐볐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의 무대가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장례식이란 결국 산 자들의 살풀이 축제겠지만, 죽은 자의 초상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30년 동안 만났을 사람을 모두 합쳐도 이 3일 동안 다녀간 사람보다 많을 리 없었지만, 할머니는 그들의 인사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인사의 일부라도 할머니가 직접 받을 수 있었다면, 오랜만에 전하는 그들의 안부인사를 대면하고 들으실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는 작은 결론을 내렸다.
장례식은 살아서 해야 하는구나.
정치인의 영정사진과 할머니의 장례식을 지나며 죽음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는 장례식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은 나랑 멀지 않은 곳에 항상 있다. 기척을 느끼고 있지만 애써 무시하는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직업사진가니까 결론은 사진에 닿았다. 영정사진은 내가 없는 상태에서 나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다. 그 인사에 어울리는 표정은 어떤 것일까? 공지를 돌렸다.
영정사진 파티를 해보아요!
평일 저녁, 지인 몇 명이 모였다. 각자 생각한 작은 소품을 갖고 왔다. 나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준비했다. 모여서 각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경우든 주변인의 경우든 죽음을 가장 가까이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하고, 못다 한 것, 못 다 가본 곳, 못 다 만난 사람을 떠올렸다. 원하는 배경을 고르고, 원하는 콘셉트로 서로 웃으며 죽음을 찍었다. 만약에 지금 세상을 떠난다면 마지막 인사로 보여줄 표정, 그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집안 잘 보이는 곳에 두라고 하고, 유통기한은 1년으로 했다. 매년 새로운 영정사진 파티를 하면서, 액자에 사진만 바꿔 넣자고 했다.
대화의 소재는 죽음이었지만, 결론을 역설적이게도 삶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표정은 결국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과 닮아 있었다. 한 장의 사진과,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결론이 조촐한 파티의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