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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Feb 20. 2022

그렇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2월에 한 생각들

마음이 복잡할 때,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 끄적거린 메모들을 모아서 보면 뭔가 보일까 싶어서 모아봤다. 물론 아무것도 안 보일 수도 있다.


-


1.

확실히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래야 기운이 좀 나는 것 같다. 힘들어 죽겠는데 억지로 말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사람들이 뭐든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어떤 것이 힘들고, 어떤 것이 즐겁다고. 

우리는 모두 아주 다른 사람이고 어쩌면 영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겨우 내보인 것들 사이에 조그맣게 겹치는 어떤 순간이 있을 수 있으니까. 너를 이해해. 나를 이해해 줘. 그때만큼은 그 순간이 인생의 전부인양 굴고 싶다.



2.

‘너 지금 이거 안 하면 큰일 난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의도라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히게 되니까. 그리고 실은 나도 그런 메시지가 괴롭다. 정말 그렇게까지 큰일 날 일이라는 게 있나 싶기도 해. 솔직히 나는 그냥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제일 먼저 예측하려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가려고 너무 애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텐데. 그때그때 최선의 대응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아마 이런 마음이라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만.



3.

망고는 이제 더 이상 짖지 않는다. 원래도 잘 짖지 않는 개였지만, 특히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 아예 모든 소리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 가끔 잘 때면 꿈을 꾸는 것인지, 달리는 것처럼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이면서 아주 살짝 ‘왕!’하고 짖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듣는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옆에 가만히 같이 눕곤 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개가 꿈에서는 어떤 것을 보고 들을지 궁금해하면서 나도 같이 잠이 든다.



4.

당최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어서 스스로에게 깜짝깜짝 놀란다. 역시 서는 위치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5.

2월에 새로 시작한 일이 하나 있다.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10분, 20분 간 스트레칭 혹은 요가를 하는 것, 그리고 이때에는 가급적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것이다. 최근 몇 주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아침마다 평정심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루틴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는 꽤 잘 해내고 있다.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않고 가만히 있는 순간을 잘 못 견디는 편이다. SNS 같은 고 자극에 매우 중독되어 있고. 그래서 차를 마시면서 가만히 명상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요가 동작을 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 5분 정도 아무것도 안 해도 큰일 안 나. 괜찮아.' 하고 되뇐다.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혼잣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6.

이번 주에는 유독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운 순간이 많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라 매우 생소하다. 내가 그렇게 바보 같이 굴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데, 또 알아주었으면 싶기도 하다. 



7.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는 새해 목표를 세웠었는데 큰 그림은커녕 작은 그림도 못 그리고 있다.



8.

고민을 깊게 하고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일단 해보고 하면서 뭘 깨닫든 배우든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다. 일단 해봄직한 일을 하나 골라서 뭐든 시작하면, 그다음 순서라는 게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이 굴러간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지만 운이 좋은 건지 감이 좋은 건지 지금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반면 요즘은 대체로 주어진 과제들에 대해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너무 크고 방대한 문제 앞에서 자꾸 주눅이 들고 마음만 답답해지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컴퓨터를 끈다.



9.

불편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억지로라도 멋져 보이는 것, 내 생각과 다른 것, 불편한 것, 의외의 것을 보고 들으려고 했다. 이해도 못할 영화를 굳이 찾아보고, 끝내 읽지 못할 잡지와 책을 아득바득 사서 쟁여놓고,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의 SNS 글을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곤 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고, 떠올린 적 없던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시간들이 나를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어주었다고, 적어도 예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불편함을 감내해 온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에겐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다. 좋은 성과도 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끔은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무섭다. 어떤 무서움이냐면, 세상을 딱 하나의 렌즈로 바라보는 것 같은. 영영 그 안에 갇혀버릴 것 같은. 오늘 본 인터뷰 속 문장을 빌리자면,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직업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지경’이 되어버릴 것 같은, 그런 두려움.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은 아닐 것이다.


잘 모르겠다.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 그냥 다 모르겠음...) 인생에서 한 번쯤은 딱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경이로운 경험을 하길 바랄 때도 있었다. 어쩌면 그게 지금인지도 모르고. (그 정도인가? 묻는다면 좀 애매하긴 하지만.) 하지만 한 번씩 멈춰 서게 된다. 뒤를 돌아보고 갸웃하게 된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 맞나. 이만큼의 가치가 있나. 이렇게 쭉 가면 내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나. 이 모든 의문에 확실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어서 조금은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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