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부대 어벤저스
오늘도 탄천 러닝에 나섰다.
원래 5킬로만 뛰려고 나섰는데
오늘따라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좋길래
그냥 쭉 달렸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저 멀리서 일렉사운드가 에어팟을 뚫고 들려왔다.
동네잔치라도 하나?
가까이 가보니 한 노신사 분이
일렉기타 연주에 심취해 계셨다.
그분 옆엔 ‘XX교회’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있었다.
아, 전도 중이시구나.
근데 뭔가 이상했다.
보통 전도할 땐, 전단지랑 휴지 같은 거 주지 않나?
아니면 확성기로 목이 째져라 소리를 지르거나...
그런데 그분은 내리 연주만 하고 계셨다.
그것도 찬송가도 아니다.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팝송을 연주하고 계셨다.
심지어 연주도 수준급이다.
이미 청중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박수치며 연주를 경청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이게 전도인가? 아니면 자기만족?
것도 아니면, 전도를 하기엔 너무 내향적이라
기타 연주로라도 관심을 끄시려는 거였을까?
답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박수를 치며 지나갔다.
그분은 멘트도 없이 다음 곡을 연주했다.
벤치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처음엔 그냥 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VR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
맞다... 그 고글 같은 장비.
양손에는 컨트롤러까지 들고
완전히 다른 세상 속을 허우적 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오만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제 막 당근 거래를 마치신 거겠거니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못 본 척 지나쳤다.
아.. 다리가 저려온다.
죽을 거 같다..
저 멀리서 자전거 탄 라이더가 가까워진다.
라이딩 복장에 헬멧, 고글까지 풀착장을 했다.
그는 빛의 속도로 나를 지나쳤다.
그런데 뭔가 쎄하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바퀴가 하나였다.
외. 발. 자. 전. 거.
정신이 번쩍 뜨였다.
늦은 오후 햇살이 눈을 찌른다.
저 멀리 공작새 같은 형상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이제 헛 것이 보이나 보다.
가까이 보자 드러난 정체.
형광 보라색 헤어,
오로라빛 선글라스,
새하얀 수염.
그는 정말 인간 공작새였다.
눈이 부셨다.
내가 너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쿨하게 윙크 한 번 날리고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됐다.
오늘은 나를 위한 마라톤 대회였다고 생각하자.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한 지점마다
서프라이즈 응원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던 거다.
전도하는 뮤지션
메타버스 워리어
외발자전거 타는 광대
피날레를 장식한 오뛰꾸뛰르 모델까지...
여러분 덕분에,
웃으면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탄천마라톤 유치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