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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Jun 21. 2020

심리상담자가 권하는 눈물의 힘

심리상담자의 마음책방#3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시인은 최근 문학계의 아이돌이라 불릴만큼 핫한 작가인데요. 좀처럼 시 한 편 읽을 일 없는 요즘 세상에, 시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서점으로 불러들일 만큼 매력있는 시인임에 분명합니다. 박준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나도 저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반짝이는 글솜씨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시인은 참 여러 모로 근사한 직업이지요.


이 책은 그가 첫 시집 이후 6년 만에 펴낸 에세이집이예요.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읽는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무를만큼 인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제목에 참 마음이 끌렸어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이런 순간이 있지 않나요? 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고 자조하게 되는 순간. 우는 건 사치야 정신 차려야 해, 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 보다는 목 끝까지 올라온 울음을 삼키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 순간. 그럼에도 기어코 눈물이 맺히고야 마는 그런 순간들 말이예요.


그래서 오늘은 '눈물' 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여러분은 어떨 때 눈물이 나시나요?

그리고 눈물이 날 때 주로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상담실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순간을 함께 하게 되는데요. 사람이 심리적인 상처를 입는다는 건 감정이 건드려질 때고, 치유 역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해나가는 힘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럴거예요. 즉, 심리상담은 본질적으로 감정을 다루는 일이지요. 그 중에서도 눈물은 가장 최고의 감정 표현 중 하나이다 보니 상담자는 언제나 눈물을 의미있게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상담 시간에 할 말을 빙빙 돌려가며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 눈물을 보일 때, 그 때의 눈물은 그 사람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구나 하며 상담의 몰입도가 확 높아질 때가 있어요. 혹은 뿌연 안개 속을 걷듯 내 감정을 나도 몰라 헤매고 있던 사람이 울기 시작한다면 이제야 스스로를 마주 할 준비가 된 것 같아 축하와 응원을 보내게 되기도 해요. 때로는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사람 앞에서는 눈물을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덜 외롭기를 바라며 한참을 조용히 기다리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울게 만드는 눈물의 주제도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데요. 사는 게 퍽퍽해서, 출근길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간절히 바라던 시험에 떨어져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안 생겨서, 나 자신이 너무 못나보여서 등등 저마다의 아픔과 좌절, 상실감,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냐는 무력감을 눈물과 함께 토로하러 상담실에 오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해요.


" 선생님,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운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


맞아요. 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눈물을 그치고 돌아가야 할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고 답답할 수 있어요. 오히려 잘 참고 있던 내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대책없이 무너질까봐 겁이 나기도 할거예요. 이렇게 울고만 있는 내가 한심하고 못나 보여 자책을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맘껏 울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마음의 여유를, 나 자신의 모습을 허락하기 힘들어하기도 해요.


 <photo by  Theeradech Sanin>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여전히 힘이 있더라구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에세이의 한 구절인데요.


저는 이게 눈물의 힘 중 하나라 믿습니다.


눈물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온전히 나눌 수는 없어도, 감정을 토해내는 처음과 끝을 누군가가 함께 해준다는 작은 연대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내기도 함을, 상담실에서 배웠거든요. 그리고 실컷 울고 나면 그 얼마 간의 홀가분함이 뜀박질 할 기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일을 걸어 갈 한발자국 만큼의 힘을 꾸욱-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는 것도요.


작가가 눈물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에세이 제목을 붙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작가 역시 눈물이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삶의 무수한 결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 눈물들을 위로하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요? 눈물 속에도 힘이 있다고, 그러니 맘껏 울라고 한 편, 한 편의 글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토닥이고 싶었던 거겠지요?


매번 눈물이라는 사적인 경험을 나누는 상담자로써저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요.

힘들고 슬플 때면 좀 울어도 괜찮다고. 혼자 울기 힘들면 누군가를 붙잡고 같이 우는 것도 괜찮다고.


차오르는 눈물을 꾸역꾸역 누른다고 해서, 내 감정까지 날아가 버리지는 않더라구요. 소화되지 않은 감정은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고, 어느 틈엔가 불쑥 나를 건드리고 생채기를 내더라구요. 차라리 흐를 눈물이면 애써 부정하지 말고 흐르는대로 두는 게 더 나를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이예요. 눈물이 나면 그저 가만히 그 순간의 일렁이는 감정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나의 눈물이 어디서 비롯되는 건지, '너 마음 어디가 그렇게 아프니' 하고 내 마음에 친절히 말을 걸어주세요.  '너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내 마음을 섬세히 보듬어주세요.


삶에서 좌절은 계속 계속 오게 마련이고 눈물은 또 흐르겠지만, 이렇게 가득 차 있는 감정의 통을 얼마간 비워내고 나면 새로 올 고통을 담아 낼 마음의 공간도 조금은 더 넓혀질 수 있을거예요. 운다고 상황은, 현실은,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방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이 모든 걸 마주하는 내 마음의 결은 보다 담담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눈물은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어요.


<photo by Annie Spratt>


그러니 삶에서 눈물이 찾아오거든,

그 힘을 믿고 기꺼이 반겨주고

토닥여주실 수 있기를 바랄께요.

나의 눈물도,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도.


여전히 운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은가요?

울고 나면, 그리고 그 눈물이 건내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다시 내 마음에 잘 담아낼 수 있다면

내 마음이 어딘가는, 무언가는 반드시 달라져요.  




*이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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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smallwav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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