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1454호 마동석 특집호에, 또 천만 관객을 달성해버린 영화 <범죄도시4> +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해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썼다. 이 시리즈는 관객 수와는 정말로 상관 없이 비평적으로는 늘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재밌는 건 보통 관객 흥행 잘 된 영화에 평론가들이 비평적으로 ‘구리다’고 말하면 일반 관객 반응이 “역시 평론가들 다 쓰레기야.. 재밌기만 하구만 왜 난리야” 쪽으로 나오는 편인데, <범죄도시> 시리즈만큼은 “재밌긴 한데 솔직히 별점을 준다면 나라도 높게 주지 않을 것 같긴해” 식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범죄도시> 시리즈, 특히 3,4편이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닌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대한민국 모두가 알고 심지어 마동석 본인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천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준 낮은 영화를 좋아하는 수준 낮은 사람들인 걸까?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바라며 브랜드 상품을, 프랜차이즈 상품을 소비하는걸까. 같은 의미로, 그렇다면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새마을 식당을 홍콩반점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수준 낮은 사람들인 걸까? 그런 의미에서 <범죄도시>는 (모든 영화들이 그렇겠지만) 더욱이 별점만으로는 평가를 끝내서는 안 되는 작품이며, 그래서 마동석은 더 자세히 다뤄져야 한다. 마동석은 어떻게 계속해서 성공하는가. 마동석의 자리에 백종원 혹은 나영석을 넣어도 어느 정도 성립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정성일 평론가가 그랬다. 천만 영화는 (사회적) 사건이라고. 마동석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들은 씨네21 1454호를 읽어주시길.
거기에 실린 내 글의 제목은 ‘마석도의 다음 펀치는 어디’이다. 마동석의 다음 펀치와 펀치라인이 정말로 유효한 일격을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을, 그가 재미 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라면 이런 글까지 분명 챙겨볼 거라고 믿으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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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도의 다음 펀치는 어디 - <범죄도시> 시리즈 비평 : 반복의 미학 혹은 한계
첫 문장부터 스포일러(그렇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로 시작하고 싶다. 마석도(마동석)는 <범죄도시4>의 악당인 백창기(김무열)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최종 전투 공간은 이번에도 완전히 박살이 나 있다. 지난 3월에 개봉한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와 <범죄도시> 시리즈의 공통점. 두 영화 모두 (사연이야 어찌 됐든) 주인공의 괴력으로 인해 파괴된 공간이 영화의 말미를 장식한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두 영화뿐만이 아니라 여러 블록버스터 시리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그 풍경은 주로 영화의 종장에서 부각된다. 영웅과 악당간 최종 전투가 끝나면, 지친 사람들이 폐허가 된 도시와 사상자들을 수습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범죄도시>도 마찬가지다. 1편에선 공중화장실, 2편에선 버스, 3편에선 경찰서 내부를 박살낸 마석도는, 이번 신작의 끝에서 다시 한번 범죄자를 검거하느라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칸을 희생시키고야 만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기다렸다는 듯 한발 늦게 등장한 팀장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사태를 수습한다.
네 번째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수습이다. 그 모든 익숙함을 이겨내고 연속해서 천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2, 3편의 기억 때문일까. <범죄도시4>는 철저한 반복으로 자기 자신의 흥행 공식을 답습한다. 범죄 유형과 인물 그리고 장소만 달라졌을 뿐, 영화가 웃음과 쾌감을 유발하는 패턴은 전작과 거의 동일하다. 틀은 그대로고 재료만 약간 달라진 셈이다. 마치 이 방법이 극장에 천만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한 확고한 반복이다. 그 확고함으로 셀프 브랜딩한 이 시리즈는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음’이야말로 브랜드 상품의 제1 미덕이다. 4편에서 등장할 때마다 같은 명품 브랜드의 옷을 반복해서 걸치고 등장하는 서브 빌런 장동철(이동휘)처럼, 사람들은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브랜드를 찾는다.
그러나 시기마다 유행하는 브랜드가 다르듯 모든 것엔 트렌드가 있다. 그리고 그 트렌드와 너무 어긋난 결과물은 보는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장동철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빌런이라기보다 다소 하찮은 인물로 느껴지는 것 또한, 그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 평면적인 태도를 일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마지막이 자신의 수하에 있던 권 사장(현봉식)의 배신 때문인 것도 상징적이다. 장동철을 바라보는 권 사장의 시선, 말하자면 큰 흐름이자 판세가 바뀐 걸 모르는 사람은 (관객을 포함하여) 아무도 없지만, 오직 장동철 본인만은 그걸 느끼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석도가 할 수 있는 것
트렌드는 영화에도 있고, 범죄에도 있다. 이에 관해 <범죄도시>는 시리즈 내내 전략적인 접근을 선택해왔다. 개봉 시기와 시차가 있는 실제 범죄 사건을 영화에 활용해 의도적으로 트렌드와 적당한 거리를 뒀던 것이다. 그런데 4편이 선택한 사건이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2018년에 발생했던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 운영조직을 검거했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시차가 있기는 해도 더이상 못 본 체할 수 없는 트렌드.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을 본거지로 삼는, 그래서 더이상 ‘보이는 것’만을 쫓아선 소탕할 수 없는 범죄 집단이 창궐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먹과 몸만을 고집하는 형사에게 그 존재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마석도는 장동철과는 다르다. <범죄도시4>에는 그에 관한 확연한 대비가 있다. 영화는 본격적인 ‘반복’을 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방식이 시대에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지에 관한 자가점검을 실시하며 이야기 전개를 시작한다. 극 초반부에 마석도는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범죄자들이 단순 살인강도범들이 아니라 온라인에 거점을 둔 조직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민에 빠진다. 모두 알고 있듯 그의 특기는 범죄자를 주먹으로 제압하는 것이지, 최신 범죄자인 ‘컴퓨터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자신의 소관 밖의 일이다. 과연 마석도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잡는 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책임자인 팀장은 마석도에게 타협을 종용한다. “이런 사건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석도-마동석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존재 이유, 즉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묻는 것만 같은 이 질문은 그렇게 시리즈 그 자체인 제작자 마동석에게로 향한다.
<범죄도시4>는 마동석의 대답과 같은 영화다. 그건 앞서 말했듯 확고한 반복이다. 마동석에겐 적어도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는 ‘할 수 있는 것’을 늘리는 것이고, 둘째는 원래의 ‘할 수 있는 것’을 더 갈고닦는 것이다. 사실 이는 모든 시리즈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속 가능한 속편을 꿈꾸며 두 선택지를 저울질한다. 그중 마동석의 선택은 이번에도 자신의 팔뚝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를 증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엔 정확한 자기 객관화가 뒷받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관해 묻는 <범죄도시4> 속 대사는, 2024년에도 자신의 펀치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를 묻는 셀프 점검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영화는 다시 한번 자신이 가진 최고의 펀치를 날린다.
마동석의 다음 반복
그러나 위기는 위기이다. 반복은 반드시 질릴 때가 온다. <범죄도시4>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더이상 배우 마동석이 어떤 펀치와 펀치라인을 날릴까가 궁금하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글을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던지며 시작한 것도 이제 여기에 주목할 것이 공간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다. 마석도는 이제 어디에서 싸울 것인가(그리고 그걸 부술 것인가).
매번 결투가 끝난 뒤 등장해 파손된 장소의 수리비를 지불하는 팀장이 ‘커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마석도에게 허락된 다음 공간은 어디일까. 이 질문이 중요한 까닭은 마석도가 찢어버린 이 공간이 시리즈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팀장의 존재가, 이 영화가 스크린 밖의 현실로 넘어오는 것을 손쉽게 봉합해왔다. 팀장이 절절매며 현장을 수습하는 단 하나의 숏만으로 <범죄도시> 속 세계의 리얼리티를 퉁쳐왔던 것이다. 마석도의 폭력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그리하여 우리가 그걸 계속해서 즐길 수 있었던 건 제작비를 사후 결제하는 이 팀장의 존재 덕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충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정교한 펀치를 날린다 한들, 그것이 계속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러고 나서 한턱 거하게 쏘는 걸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 반복된다면, 국민 브랜드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 또한 지속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이 파괴된 공간에서 다시 질문해야 될 것이다. 마동석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그의 다음 반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