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10월 3일 오전에 출근했는지 오후에 출근했는지 기억이 나지않는다.
당시 오픈조는 10시 출근이었고 마감조가 12시 출근이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칙칙한 기억을 되살려보는데, 10월 3일 오후 11시 26분에 겉절이 사진이 있는걸 본다면 아마 마감조로 출근한 것 같다.
설거지는 필리핀 출신의 할머니 2분과 주방은 인도 출신의 펨파씨, 20대 초반의 활발한 H씨, 친절한 S씨, 주방 실장이었던 P씨, 미생물 석사출신인 P씨가 있었다.
주방에 있다가 내가 들어오면서 홀로 나간 B씨를 제외한다면 주방은 신입인 나를 포함해서 6명이었다.
L부장님은 미친듯이 돌아가는 주방에서 내게 메뉴판을 던져주면서 외우라고 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뭔 손님들이 난민마냥 들이닥치고 빌지는 숨쉴 틈없이 삐삐삐삐삐삐삐삐삑 소리를 질러대었다.
미생물 P씨는 땀으로 흥건하여 냉면만 주구장창 빼내고 있고 껄렁껄렁한 H씨는 "신경좀 씁시다! 빨리빨리 합시다! 예쁘게 나가요 좀!" 소리를 질러대며 덮밥과 중간 음식들을 보면서 조리하고 있었다.
주방실장과 친절한 S씨는 뒷다이에서 보조와 재료 준비에 한창이었고 이 아비규환 현장에서 L부장님도 소리를 질러대니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점심시간은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토핑만 조금 건드리다가 끝났다.
힘들었다.
와 이건 뭐... 진짜 힘들었다.
내게 욕하고 뭐라고 하는건 딱히 상관이 없었다. 처음이었으니까.
냉면 양념장 남은 걸 그대로 버리려던 내가 L부장님께 한소리 들은 것도 내 잘못이었고.
아이스크림 푸는 스쿱으로 그 많은 순두부 다대기를 옮겨담는 내게 P실장이 내게 한소리 한 것도 내 잘못이였다.
그때는 어떤 도구가 있는지 뭘 해야하는지 백지 상태였기에 뭘 할때마다 지적과 욕설을 들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군시절 얼이나 타던 이병으로 돌아간 것 같다.
나보다 한참 어린 H씨가 내게 뭐라고 할때마다 나는 항상 복명복창하면서 선임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죄송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회사 신입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며, 회사생활보다 죄송하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첫 근무는 사실 그냥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채 지나갔다. 뭐를 했는지도 기억도 안나고 그때도 내가 뭘 했는지 몰랐다. 단지 어떤 음식에 어떤 토핑을 하는지 외우려했고 영어로 된 빌지에 적응하려 했다.
적응만으로도 하루가 가버렸다.
식당에서 처음 일하는 것이라 그럴까? 아니면 내가 이 나이먹어서도 일머리가 부족한걸까?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느날.
2일이 지났을까? 3일이 지났을까?
피곤함에 쪄들어서 나는 퇴근 후 숙소에서 샤워하고 곧장 자버렸다. 몸상태도 좋지않아서 한달 내내 계속 기침을 달고 살았었다.
그런데 대뜸 내가 있는 숙소에서 휴무날을 맞추겠다고 주방 인원이 전부 모였다.
2층 침대에서 중국 비자를 신청하고 숙면을 취하려는 내게는 지옥에 지옥을 더한 느낌이었다.
"형, 내려와서 같이 휴무 얘기 좀 해요."
"아 미안해요. 저는 아무때나 상관없으니까, 남는 자리에 넣어주세요."
그렇게 얘기하고 자버렸는데, 그것이 아니꼬웠는지 사회생활이 부족해보였는지 다음날에 L부장님이 나를 불러서 얘기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어처구니없고 경우없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제 숙소에 스쳐지나갔던 일들이 L부장님께 흘러들어간 것도 어이가 없고 그걸 구태여 L부장님이 내게 얘기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판단했다.
10년이 넘도록 사회생활하면서도 울먹거리는 게 퍽 오랜만이었다.
17살 물류창고에서 30살 아저씨에게 멱살 잡힌 이후로 울먹거린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걸 외면으로 표출하지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으니 나 혼자만 아는 감정이다.
그 날 오후의 찰나 나는 목이 간질간질했고 심장이 답답했다.
사회생활 할 줄 모르냐는 말이 심장을 파고든다. 글쎄... 그때의 내 생각은 그랬다.
거리를 두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문신을 혐오하고 기피했다. 근데 당시에 미생물 P씨를 제외하고 주방은 문신을 새긴 사람으로 가득했다.
따라서 경계했다. 일 이외에 사적인 교류를 하지않았다. 여기가 아니라고 판단이 들면 언제든 식당을 옮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