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지옥 같은 한식당 (2)

by 조병원

주방에서 시금치를 자르고 있을 때였다.

"야, 너 시금치 이분법으로 자르는 거 몰라?"

그때는 내 귀가 어두워서 그런가? 그냥 내가 뿌리를 너무 많이 잘라서 지적했다고 생각했다.

"아, 미안해 P실장. 내가 다시 잘라볼께."

분명 미생물 P씨에게 일을 배울때는 잘 씻고 뿌리 자르고 가운데 한번 자르는 걸로 배웠었다.

그 뒤에 내가 또 그렇게 자르니 P실장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냉랭히 얘기했다.

그 눈빛은 마치 장애인을 보는 눈빛이었다.

"야, 내가 저번에 이분법으로 자르라고 하지않았어?"

"어어... 미안해. 근데 혹시 이분법으로 자른다는 게 뭐야?"

"...."

글쎄, 그런 일들이 주방에서 종종 있었다.

이제는 뭐 이해한다. 한식이라는 게 정량이라느니 통일이라느니 어렵다는 그런 말들을 이제는 이해한다.

한참 앞다이 (가운데를 기준으로 조리해서 음식 나가는 앞다이와 각종 재료와 양념을 만드는 뒷다이로 구성되어있다.) 에서 일하다보면 처음에 내가 일을 배웠던 껄렁껄렁 H씨는 해물믹스의 물을 전부 버리고 보관하라고 했다. 나가는 속도가 빠르니까 물을 넣고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후에 다른 사람은 그렇게 일하는 나를 보고 왜 버리냐고 지적하면서 다시 물을 담고 보관하라 얘기했다.

마음 깊숙이 각종 동물 이름이 튀어나왔다만, 기본적으로 "네, 알겠습니다." 를 복창했다.

비빔밥을 만드는 것부터 찌개에 들어가는 양파와 애호박의 양까지 사람들의 기준은 전부 달랐다.

배우는 입장에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

비빔밥 고기 고명을 올리는 것부터도 누구는 적다고 그러고 또 뒷다이에서 앞다이로 도우러올때면 그 사람들은 다시 너무 많다고 얘기한다.

물론 나 조차도 너무 바쁘고 L부장님은 주방에 와서 음식 빨리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니 양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뒷다이에서 앞다이로 끓여야하는 김치찌개나 냉면육수나 이런것들이 올라오면 신경써야하는 게 더 늘어났다.

그 당시 내가 태운 것도 열 손가락 안되지않을까? 4번정도는 태운 것 같다.

"소스 젓고 있냐?"

뒷다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우다다 달려가서 젓고 신경쓴다고 신경써도 어느순간 다른 일하느라 신경쓰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걸로도 욕 참 많이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성격은 보였고 P실장 눈치보기 바빳다. 나와 같은 동년배임에도 얼굴보기가 꺼려질 정도였다.

"아니! 주방에 장애인들만 모였나? 왜 이걸 아무도 못보냐?"

"아니! 병신들인가? 왜 나 혼자만 하냐고?"

"야아아아아아아아!! 조심하라고!"

말 자체가 쎄고 거칠었다. 내가 주방에 온건지 노가다 현장에서 반장한테 갈굼 당하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않았다.

항상 살얼음을 걷는 것 같고 힘들었다.

"형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

껄렁껄렁한 H씨가 내게 그렇게 얘기해도 나는 그냥 홀 정수기에서 물만 마시고 다시 들어왔다.

쉴 생각도 없고 눈치도 보였고 나 혼자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으면 불안했다.

나한테 왜 놀고있냐고 욕할까봐 그게 싫었다.

실제로 내게 그렇게 얘기한 사람들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2~3달은 보낸 것 같다.

12시 퇴근하고 밥도 안 먹고 숙소 가서 샤워 후 잠자는 일상 말이다.

"병원아, 왜 밥도 안 먹고 퇴근해?"

"아, 그냥 생각이 없어서요 하하"

K사장님이 퇴근하는 내게 종종 말을 걸었지만, 그때마다 그냥 쾌활히 웃어보이며 퇴근했다.

그때까지만해도 J 식당은 가시방석이었고 정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온 몸이 지치고 열이 날 때도 있었다. 아프더라도 괜한 말 없이 그냥 나와서 일했다.

초반에 아프다고 쉬면 근성 없다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건 어느 시대에서나 어느 직장에서나 통용되는 얘기니까 이 곳도 내게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하루 그런 일상들이 지쳐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배우는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며 요식업에 진출하기 위해 꿈을 키웠다.

목표가 확실했기때문에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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