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정든 미생물 P씨

by 조병원

내가 2개월차였다.

가장 친했던 미생물 P씨와 종종 하버를 산책하면 그는 얘기했다.

"형... 너무 힘들어요. 진짜 죽고 싶어요."

"아... 조금 버텨봐요. 좋은 날이 오겠죠."

맥주 마시면서도 우리는 하루 있었던 거지 같은 일들을 하버의 출렁이는 물결에 버리면서 위안삼았다.

그런 내 의지하는 96년생의 미생물 P씨는 결국 퇴사를 고민했다.

"진짜 죽이고 싶어요. 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거든요?"

욕도 많이 먹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보였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 움직임이 빠른 편도 아니었다. 굳이 얘기하면 행동이 느린 편이었다.

그럼에도 성실했고 묵묵히 일하는 동생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내심 붙잡고 싶었다. 나도 그만두고 다른 식당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이제 2개월차로 아무것도 못 배운채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퇴사를 마음먹었으면 가야죠. 공부 바로 할거죠?"

"네... 진짜 이번에 가면 마음 먹고 공부하려고요."

거기에서 내가 나의 욕심으로 그를 붙잡기에는 아닌 것 같았다.

12월.

홍콩의 겨울은 생각보다 추웠다.

12월이 끝날쯤 그의 송별회가 열렸다.

아쉬웠다.

24년 1월 2일이었을까?

주방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는 96년 동생의 모습에 잠잠하던 가슴이 또 울렁거린다. 첫번째의 울컥거림은 서러움의 울컥임이었는데, 두번째이자 이 식당의 마지막 울컥거림은 '정' 에서 오는 울컥임이었다.

"잘가 한국 가도 잘하고"

그 뒷말은 결국 하지못하고 그 얼굴을 똑바로 보지못했다.

목이 간질거려서 그리고 눈에 힘이 풀리면서 곧바로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든 사람은 떠나가고 새로운 사람은 자꾸자꾸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나의 일로도 꽉 차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기억도 흐릿해져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부터도 10개월이나 지났을때인데도 연락 한 통 없다. 나도 딱히 연락하지않았다.

2개월이면 사실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하다.

성씨도 기억이 나지않아 물어보고나서야 알파벳을 표기한 나 자신도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거야.'

17살 어린 내게 조언하던 40대 형님의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 조언을 듣고 나름 부정하며 어린 날의 나는 무어라 얘기했었나?

'형님! 저는 형님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연락하고 지낼거에요!'

괜스레 쓴 미소가 지어진다. 어디서 지내는지 어떻게 사시는지 연락안한지도 벌써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사람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도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미생물 P씨에게 잘 지내냐고 메세지를 보내본다.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연락의 고마움을 알기에 그에게 고마움을 전해본다.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는 모든 분들도 언젠가 나처럼 고마움을 전할 사람들을 많이 만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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