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렁껄렁한 H씨가 어느 날 갑자기 무단 퇴사했다.
H씨는 주변에 돈을 빌리고도 갚지않고 그대로 다른 곳으로 갔나보다. J식당을 모방한 B식당이었는데, J식당의 창업주가 다시 오라고 얘기했다나? 아마도 기술 유출 방지였나보다.
그래서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다가 거기서도 그만뒀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여전히 빌린 돈을 전부 갚지않아서 한참 식당에서 그런 얘기들이 돌아다녔다.
그때가 아마 1달차였을까? 기억은 나지않지만, 그 정도 되었을때다.
그때부터 더 시간이 지나 2달차, 3달차의 나는 조금씩 일에 적응하고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지고 시야도 조금씩 더 넓어졌다.
문신이 없던 미생물 P씨와 제일 친해졌고 종종 같이 맥주를 마시거나 빅토리아 하버 근처를 산책하며 미래를 얘기하거나 조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건 퇴근 후 나의 시간이었다. 온전한 나의 전유물이었다. 직장 다닐때야 어떤 이슈가 터질지 몰라서 핸드폰을 붙잡고 다녔지만, 퇴사하고 식당일을 하면서 나는 거기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오늘 숙소에서 대화 좀 해요. 1시까지 모이세요.'
주방톡에 P실장이 올린 메세지였다.
그런 메세지는 상당히 많았다. 나도 관리자를 겪었기때문에 인원관리 문제로 머리가 아픈 적이 있어서 이해는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업무시간 이외에 그들을 붙잡은 적이 없었다.
"그럼 언제 얘기할건데?"
포차에서 그렇게 얘기하던 P실장을 기억한다. 그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관리자의 능력이야.'
그럼에도 나는 단 한번도 그에게 속내를 얘기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사는 숙소에 주방 인원이 전부 있었으니까. 아마 맥주라도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었을터다.
그러나 그렇게 숙소에 모여 얘기를 듣다보면 나는 주로 까이는 신세거나 그냥 벙어리로 듣기만 했다.
의견을 얘기해보라고한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자리가 나랑 미생물 P씨 까는 자리인가?"
한번은 나오는 얘기들의 방향이 이상해서 참다못해 그렇게 대응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퇴근하면 내가 네 시다바리도 아닌데, 왜 내게 그렇게 행동하지?
일하는 것도 힘들고 바빠서 죽겠는데, 내 소중한 퇴근 후 시간을 뺏은 것도 모자라서 공적인 일을 가지고 사적인 숙소의 자리에서 의미없는 얘기를 듣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
나의 잘못과 부족한 부분을 여실히 알고있다. 내 실수와 잘못은 먼저 고백하고 항상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격려하는 부분도 있어야지 시종일관 까기만 하니 나도 점점 쌓여갔다.
게다가 더 시간이 지나서 숙소톡에 청소 잘 안된다고 비아냥으로 가득한 메세지가 올라올 때 내 이성이 끊어질뻔한 적도 있었다.
인간이 집단이 되면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비난과 지적의 정도가 넘어서면 그건 더 이상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내분이 된다.
나는 그때 이미 P실장과의 관계를 끊었다.
나와 맞지않는 사람이었다.
마감조라서 밤 12시 퇴근하고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11시 16분에 알람을 맞춰서 일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주방톡에 들어가서 알림을 읽는 일이었다.
매일 매순간 마감조였던 내가 깜빡하고 못했던 일들 신경쓰라고 메세지가 올라와있었다.
냉장고에 잡아두었던 찌개들 받침대로 가려놓지않았던 것.
냉장고에 잡아두었던 잡채 포션에 랩핑하지않았던 것.
전자레인지나 냉장/냉동고 잘 안닦은 것들.
청소가 조금 부족하거나 쓰레기 안치운거.
음료수 먹고 버리지 않은 것들.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해야하는 일들이고 내가 못했던 것들이다.
정말 12시 마감까지 혹시라도 놓친 게 있나 계속 둘러봐도 다음날 아침에는 그런 것들이 귀신처럼 적혀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답답함과 내 부족함에 스트레스 받으며 터덜터덜 출근하기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부터 한숨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내가 선임이 되었을때는 주방톡에 사진을 올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메세지를 읽는 것도 숙소인데, 나처럼 스트레스 받을까봐 하지않았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게 정답은 아닌 걸 나는 안다. 틀린 것보다 다른 거라는 걸 안다.
사람마다 그 억양과 대화할 때 단어의 선택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악마가 되기싫어하지만, 해야해. 병원아 너도 좋은 말만 해서는 안돼. 누가 악마가 되고 싶어하냐?"
L부장님은 전 직장에서 악마를 넘어 사탄이었던 내게 그렇게 조언했었다.
그 말에 틀림은 없다. 나도 악마가 되기 싫다.
하지만 그 말이 시공간을 가리지않고 악마가 되라는 건 아니다. 악마도 시공간에 따라 구분해야한다.
나로 인해 퇴사했던 중국인 직원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게 연락하는 이들이 많다. 연장근무할때마다 난 내 사비로 그들의 간식을 챙겼고 그들과 같이 땀 흘려 일해왔다. FM 을 지키되 FM 을 지키지않았다. 그게 내가 생각하고 그려왔던 관리자다.
P실장은 그 구분을 못했다.
나는 식당에서도 숙소에서도 악마였던 그에게 질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