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4일 루르드 출발 생장 도착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로 갔다. 숙소는 이미 예약을 해두었다. 루르드에서의 일정이 하루 늘어나며, 미리 잡아둔 알베르게를 취소하고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잡았지만 피레네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더 가까워진 거리였다.
순례자 여권 역시도 루르드에서 이미 샀다. 그러나 순례자 사무소를 들려야 시작하는 마음이 들 것 같아서, 또 그곳에서 조개와 알베르게 지도 등을 받기 위해서 들렸다. 길게 늘어선 순례객들의 줄을 보니 진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새 등산화, 새 배낭 티가 팍팍 나는 나였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능숙한 순례객이 된 것처럼 괜히 마음이 우쭐해졌다.
순례자 사무실을 나와 곧바로 바로 앞에 있는 여행용품 상점에 들어가 우의를 샀다. 미리 사지 않고 왔는데, 길 위에서 사도 되었을 뻔 했다. 거의 길 끝에서야 비를 맞으며 걸었으니까. 그리고 우선은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순례길이 시작하는 초입을 조금 지난 위치라 한참 걸어야 했다. 와씨,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동키 보내야겠다 마음 먹었다. 순례길 첫 코스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오고, 나는 이 길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왔던지라 배낭을 메고 그냥 걸으려고 했던 것이다. 고작 숙소까지 가는 길인데도 나는 빠르게 결정했다. 첫날부터 동키다.
숙소는 쾌적했다. 짐을 풀고 숙소 데스크에서 동키 서비스에 대해 물어보고 다시 생장 읍내(?)로 나왔다. 작은 도시라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례자 사무실 근처에 있는 동키 사무실로 가서 서비스 신청을 마치고, 뭐라도 먹을까 싶었지만 이때까지도 혼자 식당에 가본 적이 없는 여행객이라 머뭇거려졌다. 그래서 결국 슈퍼에서(문 닫기 직전에 들어가) 이것저것 샀다. 생장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짐도 많았고 무엇보다 숙소까지 가는 길이 외져서(내 기준) 해가 진 뒤에 갈 자신이 없었다. 성당에서는 초 하나 켜고 기도 드리고 나왔다.
숙소에서는 아까 해둔 빨래를 확인하고 짐을 챙겼다. 동키로 보내기로 했으니, 보조가방에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겼다. 내일 입을 옷도 미리 정리해두고 일찍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숙소에 TV가 있어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채널을 틀어놓았다. 꼬따오에서부터 루르드까지 계속 혼자였다. 숙소에서도 음악만 틀어놓았던 시간이었다. 조금씩 사람이 그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