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3_비아나-(로그로뇨)-나바레떼
돌이켜보면 이 날 만큼 발걸음이 가벼웠던 날도 없었다. 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 짧은 거리를 걷고, 로그로뇨에서 나바레떼로 버스 점프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도시인 로그로뇨에서 1박을 하면 좋을텐데 싶겠지만, 그때의 나는 도시가 싫었다. 순례길을 걸은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도시 또는 조금이라도 큰 마을에 들어가면 다음 날 그 도시를,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을은 다음 날 출발 할 때 몇 걸음만 걸으면 곧바로 길이 나왔다. 그러나 도시는 한참 걸어야 했다. 도시가 싫었다. 스페인의 멋이 느껴지는 도시라 하더라도, 유럽의 멋이 느껴지는 도시여도 싫었다. 풀과 나무와 길과 하늘만 있는, 길 위가 좋았다. 오전 7시 전후로 출발해서 12시 전에 도착하는 아주 짧은 일정이었다. 그러니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볍기만 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같이 걷던 일행과 길에서 만났다. 이들도 오늘은 로그로뇨까지이다. 나는 로그로뇨에서 버스 점프를 할 것이지만, 이들은 로그로뇨에서 1박을 한다.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우선 공립 알베르게에 이들의 배낭을 줄세워 두고, 아침을 먹을 식당을 알아보러 나섰다.
팜플로냐 이후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며칠 째 숲과 길만 보고 지내오다 도시를 만나니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우리는 도시에 왔으니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애매한 오전 시간이라 끼니가 될 것을 먹을 만한 식당이 없었다. 입간판을 봐도 스페인어 뿐이라 번역어플로 확인하기 급급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디저트류만 있는 카페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발견한 입간판을 번역어플로 읽어보니 반가운 ‘아침밥’ 우리는 다짜고짜 그곳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브런치를 파는 곳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주문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크루아상도 하나 시켰다. 얼굴만한 크루아상은 꼭 잘 구워진 통닭 같았고, 우리는 빵 하나로 또 깔깔 웃는 시간을 보냈다.
만족스러운 도시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알베르게로 나는 로그로뇨 대성당으로 향했다. 나에게 도시에서 볼 것이라고는 대성당 뿐이었다. 배낭을 메고 누가봐도 순례객 차림으로 정오의 대성당을 즐겼다. 그리고 버스를 타러 이동하던 길에 이곳에 와인 분수를 보러 갔다. 와인 축제 기간에는 분수가 와인색으로 뿜어진다고 한다. 와인 분수는 원형교차로 한 가운데 있었고, 검붉은 잘 익은 와인색의 물을 뿜어댔다. 그것이 진짜 와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스정류장을 무사히 찾아 버스를 기다리는 길, 내가 찾은 길이 맞는지 버스가 제때 오는 건지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구글맵으로는 해당 번호의 버스가 해당 시간에 온다고 했으나 버스 정류장에서는 막상 해당 노선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정류장 옆 자리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초조함을 넘어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버스가 없으면 어떡하지, 택시를 타고 가야하나, 예약해둔 숙소는 어쩌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녀는 아마 맞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아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다른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는 자신도 그 버스를 탄다며 여기 맞다고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는데 문제는, 확신을 주고는 할머니가 다른데 가버린 것이다. 맞다고 했으니 기다려야지. 얼마 있지 않아 할머니는 돌아왔고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감사하다고 눈인사를 몇 번 했다. 그리고 버스 내릴 때가 되었을 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휙 돌아보며 나보고 내리라고 싸인을 주었다. 끝까지 챙겨주신 츤데레 같은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사르르 마음이 녹았다. 점점 이곳을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