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이 날 만큼 발걸음이 가벼웠던 날도 없었다2

23.09.23_비아나-(로그로뇨)-나바레떼

by 혜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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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나바레떼, 작고 아담한 마을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북적이고 세련된 도시보다 이런 소박한 마을이 더 좋았다. 게다가 내가 잡은 숙소에 동양인은 나 하나 였다. 그것마저도 왠지 좋았다. 빨래를 하고 짐을 정리해두고 근처 탐색하러 나갔다. 슈퍼가 어디 있는지, 성당은 어디인지 등등. 미사 시간 등을 알아보고 장을 봐서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로.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고 손사레를 쳤는데, 할머니는 계속 말을 걸었다. 빠른 스페인어 속에서 알아들은 한 마디, 까미노, 페레그리노. 길, 순례자. 그제야 나는 si, peregrino. 할머니는 나에게 Buen Camino 인사를 건넸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의 말 속에는 순례자에게 건내는 은총이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데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작은 마을로 달려온 것이 마치 할머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꽤 엄하고 무뚝뚝해 보이던 할머니 모습이 헤어질 때는 다정한 우리 할머니처럼 느껴졌다.


숙소에서 장 봐온 짐을 정리해두고 다시 나왔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나는 마을마다 가만히 있지 않고 나왔다. 미사 시간이 늦은 편이었고, 아직 날은 밝았다. 식당에 들어가 양송이 타파스와 레몬비어를 주문했다. 여기서 내가 실수를 했다. 돈 계산을 잘못해서 종업원에게 계산이 제대로 된 것인지 물었다. 종업원은 천천히 설명해 주었으며, 내가 착각한 것을 깨달았다. 아차 싶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스페인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몰랐다. 자리로 돌아가 번역어플로 검색하고는 다시 찾아가 ‘로씨엔또, Lo siento.’ 사과를 건넸다. 그들은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이렇게 스페인어를 하나씩 알아갔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둑하게 해가 졌다. 작은 마을이라 해가 지니 고요하기만 했다. 어딘가 한 바퀴 더 돌고 가고 싶었지만 내일을 생각해서 곧바로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어느새 내가 머무는 마을 알베르게가 내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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