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4_나바레떼-나헤자
나바레테에서 묶은 숙소에는 젊은 아이들(내 눈에는 청소년 쯤 되어 보이는,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한 듯 보이는)이 있었다. 저녁에 미사를 드린다고 나갔다 들어오니 비어 있던 침대는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했나보다고 본 이유는, 알베르게의 풍경을 낯설어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넓은 방에 침대만 덩그러니 지그재그로 놓여 있고, 화장실은 하나. 그들은 주춤주춤 한 구석에 모여 침대를 잡아 앉았던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알베르게에 적응해가던 초반의 내 모습 같았다. 어느새 열흘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알베르게의 풍경에 적응한 것이다.
해가 짧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알베르게에서 나오며 만나는 하늘이 더 짙어졌다. 아직은 짙은 밤과 같은 하늘 그러나 저 멀리 빛이 오르는 선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얕은 능선과 나무들, 내 시야의 80% 정도는 하늘인 풍경이 매일 같았지만 매일 새로웠다.
나는 걸음이 느린 편이라 순례객을 만나는 순간은 늘 아침 그리고 숙소에 도착할 무렵 뿐이다. 아침이라 함께 걷는 이들이 있었다. 그 중 어느 아저씨는 커다란 검은 개와 함께 걸었다. 종종 개와 함께 걷는 순례객에 대한 얘기는 들었는데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작은 수레 같은 것에 짐을 싣고 개와 함께 걷는 아저씨의 모습을 따라 걸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점점 짙은 파랑 울트라마린과 같은 파란 색으로 짙어졌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 지면 그쯤부터는 늘 혼자 걸었다. 걸음이 느려서 또 중간에 내 마음대로 자주 쉬어서, 나는 이쯤이면 늘 혼자 걸었다. 그게 내 속도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 자신의 도착지가 있고, 나는 내 도착지에, 내 알베르게에 늦지 않게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각자 자기 속도대로 걷는 이 길이 좋았다. 점점 좋아졌다.
긴 포도밭을 지나며 포도 몇 송이 따 먹었던 것 같다. 앞서 걷던 순례객은 포도송이 하나 한 손에 들고 먹던데. 나는 그럴 만한 배포는 없어서 한 손에 쥐어질 정도의 몇 송이만 따서 먹었다. 달지도 않고 신맛인 포도인데도 정말 맛있었다.
걷다보니 고양이 무리를 만났다. 이 길에서는 순례객과 함께 걷던 멍멍이, 가족인 듯 보이는 야옹이 무리를 만났던 길이다. 이곳의 동물들은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걷다가 만난 야옹이 가족도 그랬다. 새끼 고양이가 내 곁에 오고 내가 주저 앉아 야옹이와 놀아줘도 부모인 듯 보이는 고양이들은 가까이 오지는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나에게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간식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전날 슈퍼에서 걸으며 먹을 오렌지 하나, 딱 그거 하나 챙기고 걸었다. 그래서 줄게 없는데도 야옹이 가족은 자신들의 구역 내까지는 나를 졸졸 따라왔다.
순례길을 걸으면 길과 얕은 산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다가도, 지친다 싶을 때 쯤 마을이 나왔다. 나헤자도 딱 그 순간에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순례길에서 샹그리아를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오예~ 과일 주스도 잘 마시지 않고, 이온 음료도 잘 마시지 않아서 내내 물 또는 첫 번째 바르에서 아메리카노 또는 카페 꼰 라체를 마실 뿐이었다. 그러다 만난 샹그리아는 정말 꿀 같았다. (물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저녁에 마시는 와인이 최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