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5_나헤자-산토도밍고
자주 만나던 미음씨, 지읒씨, 기역 언니와 알고보니 같은 알베르게 였다. 그들은 셋이 삼인실을 사용해서 늦은 밤 놀러갔다. 내가 쓴 방은 남녀 혼숙의 2층 침대방이었지만 다행이 내 자리는 1층 침대 창가였다. 오늘부터는 잘 걷고 싶어서 배낭을 동키로 보내고 좀더 서둘러 일찍 길을 나섰다. 정말 칠흑 같은 밤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들이 창가에 붙어서서 인사를 했다. 이 밤에 다른 순례객들 깨지 않게 좁은 창가에 세 사람이 붙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힘난다. 우리가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지만, 이 밤 외롭지 않게 든든한 인사를 받으며 길을 나섰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길 어디선가 그들이 나를 앞서 갈 것임을.
캄캄한 밤에 길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쯤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 이 길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지금 이 시간, 이 길 위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모두 일어나 있다는, 함께 걷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차츰 혼자 나서게 되는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프랑스길은 동쪽에 위치한 생장에서 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걷는 길이다. 그러니까 길은 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걷는다. 어둠을 향해 걷다보면 등 뒤가 밝아 온다. 아직 해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 그 빛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때마다 뒤를 돌아봤다. 일출을 보고 싶어서. 이쯤이면 올라왔나, 올라왔나? 하며 뒤를 돌아보지만 생각보다 더디다. 내 그림자가 내 앞으로 길어지고 그림자가 이끄는대로 걷다가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보면 벌써 해가 올라왔다. 서쪽하늘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해가 지는 하늘인지, 뜨는 하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아침마다 생존신고로 푸르스름하게 동이 트는 서쪽 하늘 사진을 찍어 가족톡에 보내면, 노을이 멋지구나 하는 답변이 오기 일쑤였다. 그쯤 서울을 해가 질 시간이니까. 그러면 나는 이제 하루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산토도밍고로 가는 길에는 작은 마을을 지났다. 걷다보면 마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너 집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며 또 고양이를 만났다. 얼룩 고양이는 내 스틱을 좋아했다. 나를 한참 따라오고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게 발길을 잡아서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내 스틱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유난히 스틱에 맞춰 일랑일랑 걷더라. 작은 마을을 빠져나오며 헤어졌다.
이어지는 광야와 같은 길. 이스라엘의 광야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이쯤이 메세타 고원지대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하늘이 유난히 가깝고 햇볕이 유난히 뜨겁고 또 길에는 그늘이 되어줄 나무 한 그루 없었다. 나무는커녕 잠시 앉을 벤치도 없었다. 그래서 종종 배낭을 땅바닥에 던져두고 바닥에 그냥 털썩 앉았다.
메세타가 걷기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느 정도, 어떤 풍경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런 곳이구나. 하늘과 가까워서 눈에 보이는 풍경은 정말 좋았지만,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정말 기억에 많이 남고 이상하게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중간에 작은 마을을 지나가다 수도가 있는 정자 비슷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 어떤 한국 청년도 와서 앉았다. 작은 스몰토크를 하다가 간식으로 먹던 오렌지를 몇 조각 주었다. 손을 씻었다고는 하지만, 오렌지 껍질을 까느라 너무 조물조물한 오렌지여서 두어 조각 주었던 것 같다. 청년은 간식도 없이 숙소 예약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준 오렌지 조각을 정말 고마워했다. 그 순간 아, 그냥 반 뚝 떼어 줄 걸 싶었다. 손으로 너무 조물조물해서 민망했는데 이곳에서는 그것을 넘어선 생존의 나눔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