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7_벨로라도-(버스점프)-부르고스
이곳에서 나는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야보고 선생님과 로사리아 선생님 부부였다. 두 분은 친한 언니인 에밀리아 언니의 대모님 부부시다. 순례길에 오른 초반에 나는 에밀리아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와 만났을 때 언니가 들려준 순례길의 경험이 기억에 남아서였다. 언니는 지금 이 길에 자신의 대모님 부부도 걷고 계시다며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언니가 순례길에 있는 나와 대모님 부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우리는 부르고스에서 겹치는 일정이었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야고보 선생님은 이미 순례길에 여러 차례 왔었다. 부부가 같이 걷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고, 에밀리아 언니도 이 길에 만난 인연이라고 했다. 이제 나까지 순례길에서의 인연이 더한 것이다. 두 분은 넉넉하고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다. 오는 길에 로사리아 선생님이 베드버그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주시며 조심하라고 했다. 베드버그 나와 무관한 일인 줄 알았다.
두 분과 헤어지고서 나는 또 뽈뽈 거리며 돌아다녔다. 이때부터는 길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대도시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초반에 로그로뇨를 건너뛴 것이 못내 아쉬웠다. 부르고스 대성당과 주변의 성당을 둘러보며 어슬렁어슬렁 다녔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너무 멋졌다. 이때부터 대성당의 매력에 눈을 뜬 것 같다. 그래서 무릎을 더 혹사하게 되었지만...
부르고스도 골목마다 성당마다 사연과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즐거웠다. 대성당을 다 보고 그 뒤에 있는 또 다른 성당을 보러 가던 길에, 어느 외국인 커플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좋아~ 잘 찍지 못하는 사진이지만 이리저리 여러 각도로 찍어주었다. 여자는 살짝 도도한 표정이었지만 남자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 생각했지마 그 마음이 고마워서 폰을 넘겼다. 결과물을 보니 영- 그렇지만 덕분에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길에서 나는 내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다. 그러나 길을 마치고 사진들을 돌아보니 까맣게 탄 내 얼굴이 너무 편안하고 밝아 보여서, 진작 많이 찍을 걸 후회했다.
낮에 이렇게 돌아다니고 나니 저녁이 되어서는 유명하다는 부르고스의 일몰과 야경을 보러 뒷동산(?)에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대모님 부부와 저녁에 만나기로 해서 밤 산책에 나섰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핀초 몇 개와 와인을 마셨다. 두 분은 유쾌하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린아이 마냥 한껏 마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는 침대가 불안했다. 나는 2층을 배정 받았는데, 이렇게 흔들리는 침대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올라갈 때도 불안하고 올라가서도 불안했다. 2층의 난간이 낮았기 때문이다. 마음만 불안했을 뿐 내 몸뚱이는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