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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서 만나는 쪽빛 두려움을 너머

1월 22일 주제 - 바다

by 생각샘

‘바다’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색이 있는가? 파란색, 하늘색, 옥색, 에메랄드빛...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다양한 색들이 있을 테다. 나는 짙은 쪽빛이 떠오른다. 나에겐 매혹적인 두려움의 색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바다를 처음 보았다.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간다 해도 계곡이나 개천이었지 해수욕을 가보지는 못했다. 짐작컨데 가난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부모도 경험해보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첩첩산중 두메산골에서 살다 도시로 나와 신혼살림을 시작한 나의 부모님도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야 바다라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본인들도 가보지 못해서 우리를 데리고 가볼 생각도 못하셨던 게 아닐까? 만약 산골이 아닌 바닷가에 살았다면 달라졌을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 처음 바다를 봤을 때 너무 생경한 바다 모습이 무서웠다. 냄새도, 소리도, 진하게 그어진 수평선도 무서웠다. 발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모래의 간지러운 감촉도 낯설었다. 대학 동아리의 여름 엠티는 매해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낯설고 두려운 풍경에 적응할 사이도 없이 동아리의 친구들은 있는 대로 흥분하여 정신없이 떠들었다. 조용히 나의 감정에 익숙해질 여력이 없었다.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 바다를 보며 바다의 소리와 냄새를 음미하고 익숙해진 것은 남해바다에서였다. 녹동항 근처에서 한 달을 살 때였다. 녹동에서 제주로 가는 배에서 본 망망대해는 너무 넓고, 너무 깊었다. 그 검푸른 쪽빛 바다가 매혹적이고 두려웠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끝을 알 수 없으면서 바다를 건너는 옛날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미지의 바다를 건너 처음 항해를 하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검푸르게 넘실대는 바다를 건너면 땅이 끝나는 곳에서 펄펄 끓는 바닷물에 통째로 삶아질지도 모른다고 믿었다던데. 어떤 괴물이 나올지 모를 그 암흑의 바다를 어떻게 건너갈 용기를 내었을까? 그런 바다를 건너다 표류하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공포를 이겨냈을까?


나는 바다를 보며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낀다. 아마도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인간이 가진 이러한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책을 알고 있다. 캐나다로 가던 화물선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순간에 가족을 모두 읽은 열여섯 살 소년이 신을 만나는 이야기다.


<파이 이야기>

호랑이와 단 둘이 배에 남게 된 파이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망망대해의 태평양을 표류했던 파이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더 마음에 들어 할지 궁금하다.


나는 첫 번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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