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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Mar 01. 2020

제대로 주인을 찾아 간 인생 숙제


“자기야~, 내가 부탁이 있어. 들어줄 거야?”

“뭔데?”

“자기가 들어줄 거면 말해주고.”

“들어봐야 알지. 그냥 말해.”

“어머니에 관한 거야.”

“뭔데?”


시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남편의 얼굴이 어둡다. 본인의 엄마를 말할 때마다 얼굴이 굳어지는 남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저런 마음을 알까?


“음.. 자기는 어머니가 나한테 왜 그러셨던 것 같아?”

망설이던 남편이 묵직하게 답을 뱉어냈다.

“질투 때문에.”

“맞아. 내 생각도 그래.”

“그럼, 어머니가 왜 나를 질투하시는 것 같아?”

“글쎄.”

“어머니가 나를 질투하시는 건 다 어머니 잘못일까?”

“......”

“난 아니라고 생각해. 난 자기랑 나한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

“무슨 잘못?

“일단 자긴 나한테 참 다정하지만 어머니한테는 곁을 안주잖아. 차갑게 거리를 두지.”

“그거야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막 대하니까 그렇지.”

“그렇긴 한데, 어머니랑 내 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도 자긴 어머니가 나 힘들게 하면 어머니랑 연 끊고 나랑 살겠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 나?”

“기억 나. 그런데 왜 힘들다고, 엄마가 그랬다고 말 안 하고 숨겼어?”

“오빠가 진짜로 그럴까 봐 걱정됐었나 봐. 오빠가 너무 힘들어서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한 건데, 내가 참으려고만 한 것도 잘못인 것 같아.”

“음... 그건 좀 어렵다. 그렇게 참느라 네가 힘들었으니까 참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도 사실 그때 참아 준 네가 참 고마워. 네 말대로 난 너무 힘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다른 어려움까지 생겼다면 네가 걱정하는 선택을 안 했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네.”

“그렇군. 참은 게 너무 바보 같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네. 십 년 세월이 허무하지 않아 다행인 건가?”

“고마워.”

“하지만 난 결국 참지 못했고,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무슨 방법?”

“내 생각에 나랑 어머니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 자기가 힘들어 보인다고 자기가 해야 할 효도를 내가 대신했기 때문인 거 같아.”

“무슨 말이야?”

“이건 내 잘못이기도 해. 자기는 어머니를 잘 모르고, 어머니는 당신 아들을 잘 모르시니 내가 가운데서 대신 효도를 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했어. 그렇게 한 일이 오히려 어머니랑 오빠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한 것 같아. 그런데 어머니랑 오빠 사이가 멀어질수록 내 목이 더 조여 오더라고. 그래서 어머니랑 오빠가 서로를 좀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어떻게?’

“어머니 모시고 여행을 좀 다녀와. 둘이서만.”

“나 바빠. 이번 달 프로젝트 때문에 집에 들어오기도 힘들 것 같아.”

“음. 자기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2안을 준비했어.”

“뭔데?”

“어머니랑 둘이서 카페 데이트.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에는 쉴 거 아니야.”

“엄마랑 둘이 카페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하라고.”

“음, 자기가 또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뭘 그렇게 많이 준비했어?”

“응. 많이 준비했어. 바로 아들이 하는 어머니 인터뷰!”

“뭐? 야, 인터뷰가 아니라 취조하다 끝나는 거 아니야?”

“음, 자기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준비한 게 있어.”

“너 요즘 한가하냐?”

“그럴 리가. 자기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는 거지. 들어 봐. 내가 자기를 위해서 질문 목록과 규칙까지 다 만들어 놨어.”

“뭔데?”

“질문은 문자로 보내줄게. 규칙은 바로 이거야.”

“.....”

“반드시 눈빛에 사랑을 담아 어머니를 바라볼 것!”

“풉.”

“웃지 마. 제일 중요한 거야.”

“애쓴다.”

“그러게 나 참 애썼네. 그러니까 꼭 해 봐. 어머니랑 오빠한테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나 이번 달에 바빠.”

“자기야, 한 번 멀리 보면서 생각해 봐. 먼 미래를 보라고. 자기는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쭉 바쁠 거야. 그러니까 큰 맘먹고 시간을 한 번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을 생각해본다면, 어머니한테도 자기한테도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구나!’싶을 거라고.”

“..... 알았어.”

“자, 약속! 녹음도 해 와!”


남편이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꾹 찍었다.

아주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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