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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Mar 05. 2020

누워서 침 뱉기

우리 아들은 참 엉뚱하다. 혼자서 만화책을 보는가 싶더니 심심하다며 만화책 속에서 나오는 바보짓을 따라 하며 말한다.

“엄마, 누워서 침 뱉으면 내 침이 떨어져서 시원해.”

“이런, 실없는 놈.”

아들을 비웃던 나도 브런치에 대자로 누워 침을 퉤, 퉤 신나게 뱉었다.

울면서도 뱉고, 웃으면서도 뱉었다.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온 힘을 모아 침을 뱉었다.

시어머니에게 용심을 내려줬다고 믿었던 하늘을 향해 뱃속부터 끌어모아 뱉은 그 모든 침이 고스란히 나에게 떨어진다.

그 와중에 후련하다.  

내가 뱉은 침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의 상처를 낫게 할지 더 아프게 할지 모르겠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시어머니 흉을 보며 아프다고, 아팠다고 징징거렸다.

내 상처에서 나온 피와 고름을 만나는 사람마다 묻히고, 가는 곳마다 질질 흘렸다.

민폐도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그야말로 추하기 짝이 없는 좀비와 같은 모습이었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그들은 얼마나 지겨웠을까?


하지만,

그들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나는 사실 알고 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다.

내가 아픈 것이 시어머니 때문만도 아니다.

나도 아프고 시어머니도 아프고 그래서 누구보다 남편이 아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시어머니도 자신의 시어머니와 함께 한 모진 세월이 아팠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그 모든 시어머니들은 소중했어야 할 딸들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모든 시어머니들은 자신의 며느리도 소중한 딸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렇게 괴물이 되었다.

나는 그런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괴물을 만들었는지 알아야만 했다.

괴물을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결혼 생활을 해보니 사위는 백년손님이지만 며느리는 백년노예였다. 그 사실을 십 년을 참고서야 깨달았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으로 십 년을 보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들은 나에게 그 멍에를 씌우지 못해 애가 닳았다.

이제 노예 며느리는 거절한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연을 끊었다.

 ‘인연 연 緣’
“‘緣’은 彖(끊을 단)이라는 그릇의 테두리를 묶은 주술용 매듭 糸(실 사)을 칭하는 글자라고 한다. 실처럼 잇거나 끊거나 하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소중했어야 할 과거의 딸들을 죽인 피 묻은 낡은 실로 나를 묶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소중한 딸들과 연을 맺고 싶다면, 새로운 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새로운 실은 팽팽하게 목을 조여오며 ‘나를 위해 너를 죽이라’는 것이 아닌 실이어야 한다.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너도 살고 나도 살고 그래서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실이어야 한다.

새로운 실을 사용하는 법칙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들도 딸도 소중하다.

그래서 며느리도 사위도 귀하다.


이 땅의 모든 소중한 딸과 아들을 위해 새로운 연을 맺으시겠습니까?







꿈이 작가였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 많이 울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영화를 보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울고,

수업을 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은 왜 우리한테만 글쓰기 시키고 선생님은 안 쓰세요!”라며 항의를 할 때도,

집에 돌아와 엉엉 울었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머릿속에 늘 맴돌던 의문들,

마음속에서 덜거덕 거리며 돌아다니던 딸들의 사연을 모아 용기를 내어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서 작가라 불리는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되어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만든 이 이야기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혼자 막 생각해버리겠습니다.

제 두 번째 동화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동화는 -팔지는 않고 동네 작은 도서관에 전시만 했지만 - 어쩌다 보니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실 “시어머니와 연을 끊었다”라는 제목으로 묶은 스무 편의 글은 작년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서 올해 2월 초에 다 끝냈습니다. 한꺼번에 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걸 참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3월 말까지 일주일에 한두 편씩 공개하려 했지만 예정보다 서둘러 발행했습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였거든요.

 앞으로는 아이들과 철학하는 이야기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찾아와 주시면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행복한 기분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이번엔 정말 천.천.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덧) 얘들아, 너희들이 하도 쌤도 쓰라고 해서 썼다, 썼어. 그러니 이제 마음껏 너희를 갈굴 것이다. 움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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