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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l 18. 2020

뛰는 시어머니, 나는 며느리

활공하는 며느리의 말대답 지침서

‘쥐며느리’는 ‘쥐’와 ‘며느리’가 합쳐 생긴 말이다. 쥐며느리는 그늘지고 습기 찬 땅바닥에 산다. 엄하고 마음씨 고약한 시어미를 보고 고개 푹 숙이고 구부려 꼼짝 못 하는 며느리처럼, 쥐가 나타나는 날에는 놀라 몸을 움츠리고 죽은 시늉을 하는 벌레라서 쥐며느리라고 부른 것은 아닐까?

[출처] 쥐며느리|작성자 멀더씨


 불쌍한 쥐며느리는 어쩌다 그 더럽고 치사한 며느리가 되었을까? 잠깐, 내가 지금 쥐며느리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나도 며느리다. 내 코가 석자인데 쥐며느리를 걱정할 때인가? 나는 어쩌다 저렇게 잘못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꼼짝 못 하는, 세상 더럽고 치사한 며느리가 된 거지? 난 단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사느니 평생 독수공방을 하며 혼자 살겠다고 비혼자가 되었다.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은 남편보다 시어머니가 좋아서 결혼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한다. 며느리라고 다 같은 며느리는 아닌가 보다.


 나도 우리 시어머니 너무 좋다고 쓰고 싶다. 막 시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싫다. 시어머니가 너무 싫어서 이혼을 수만 번도 더 생각해 봤을 정도로 싫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도 소위 ‘며느라기’라는 시절이 있었다. 시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세뇌를 당하고 자란지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 무던히도 참으며 노력했던 시절이 있다.


 주변의 어떤 시어머니는 정말 현명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저절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분들도 계시더만. 나는 그런 시어머니 복은 없다. 그분 소양이 부족해서 인지 내 소양이 부족해서 인지 아니면 둘 다 그 나물에 그 밥, 도토리 키재기로 좁아터진 소양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지혜롭고 자상한 시어머니는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존경과 사랑은커녕 저 냥반이 제정신이신건가 의문이 드는 일이 갈수록 많아졌다. 아이고야, 저분은 며느리를 종년 하나 들인 것쯤으로 생각하시는 거구나 그런 확신이 드는 언사를 하실 때가 많았다. 세상만사 모든 힘든 일은 며느리가 해야 하고 잘못되는 모든 일은 며느리를 탓하는 그분을 보며 나는 며느라기 시절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며느리를 갈구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는 시어머니에게 밟혀 죽지 않으려면 차라리 시어머니 머리 위에서 느물 느물 날아다니는 며느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활공하는 며느리의 말대답 지침서>

 시어머니가 끝이 뾰족한 세모눈을 하고 바짝 독을 세워 잔소리를 시작하면 며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대한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공손하게 -며느리라면 누구나 궁금한, 바로 - 의문을 제기한다.

# 상황1 - 니가  집안에 와서   뭐가 있냐!
네에? 저는  집안에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들이  집안에서 나와서 결혼한 건데요. 어머니 아들이 나오면서   하던가요?

#상황 2 - 니가 결혼해서   뭐가 있냐!
  벌어서 어머니 아들 먹여 살리고, 아이 낳아 키우고, 살림하고 그러잖아요. 보시면서  모르세요?

#상황3 -  그렇게 똑똑한 척을 하더니 고작 그런 대학밖에  나왔냐?’
 대학에서 주는 장학금 받고 공부해서 어머니 아들이랑 손자 먹여 살리는 거예요.  대학에 고맙지 않으세요?

# 상황4 -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남편이랑  먹을 끼니까지  준비해놓고 청소며 빨래며 살림도  해놓고 일나가라.
(시어머니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며) 세상에나! 어머니는 그렇게 불쌍하게 사셨어요? 무슨 콩쥐 이야기 듣는  알았네요. 아버님은 뭐하시고 어머니 혼자 살림하고  낳아 키우고 돈까지 벌어 오셨어요?

#상황 5 - 시어머니의 상상 속에서 바람난  남편에 대처하는 자세
시어머니 : 혹시  남편이  여자 생겨도 그건  니가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고 참아라. 남편 바람은 순간이니 여자가 참으면 가정으로 돌아온다.
며느리 : (진심으로 놀라며! 놀랄 수밖에 없으니!) ~! 아버님 바람도 피우셨어요? 아버님 진짜 나쁜 ...네요.
시어머니 : (당황하며) 아니 아버님은 바람피우고 그럴 .. 사람이 아니지. 얼마나 가정에 충실한 양반인데!
며느리 : (의아해하며! 의아할 수밖에 없으니!) ?! 그럼 아버님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머님 아들은 그럴만한 나쁜 놈이던가요?
시어머니 : ..아니..그런 말이 아니고... 그럴 만한 놈이 아닌데 그런 짓을 했으면 니가 잘못한 거니까 니가 참아야 한다는 거지. 알았냐?
며느리: ! ,   같아요. 어머니, 저도  바람피우고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른 남자가 생겼으면 어머니 아들이 잘못한 거니까 어머니 아들이 참아야 하는 거죠?
시어머니: ?
며느리: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가 알려주신 거니까 어머니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면 다른 남자 만나서 풀고 가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가정에 충실한 여자거든요.

#상황 6 - 시친며(시어머니 친구 며느리)와의 비교에 대처하는 
시어머니 : ( 그렇듯 뾰족한 세모눈을 하고)  친구 며느리는 명절이며 제사  음식을  해가지고 온다더라.  남편이 놀아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식사 준비까지  해놓고 일나간단다. 너도..
며느리 : (그다음에 나올 말을 예상한 듯이) 어머니, 비교는 나쁜 거예요. 하지 마세요.
시어머니 : (눈을 부릅뜨며) 내가 언제 비교했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며느리 : 어머니,  친구 시어머니는요. 결혼할  30평대 브랜드 아파트를 사주셨다네요. 아들 낳았다고 벤츠도 새로 뽑아주셨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하는  들으면 어머니 기분 좋으세요?  말을 하는 의도라는  있고 상대방이 들었을  기분이라는  있잖아요. 쓸데없이 남하고 비교하며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어딨어요. 어머니가 브랜드 아파트랑 벤츠  사주셔도 저는 어머니를 다른 시어머니랑 비교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다신 비교하지 마세요.
시어머니 : (버럭 화를 내며)  지금  가르치냐?
며느리 :  나름 인기강사에요, 어머니. 내년 수업까지 마감돼서 저한테 수업 들으시려면 후년 수업 예약하셔야 합니다. 배우시려면  서서  내고 배우셔야 하는데.....배우시게요?
시어머니 : 시어머니한테 누가 그렇게 말대답을 따박따박하라고 했냐!  그렇게 배웠냐?
며느리: (때마침 궁금한  생각났다는 듯이)  진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어머니는 누구한테 배우신 거예요?
시어머니 : (어이없어하며) ?
며느리 : 아니 시어머니들이 며느리  뒤집는 멘트가 하나같이 똑같으니 너무 신기해서요. 시어머니들은  같이 손잡고 어디 며느리 갈굼 학원이라도 다니시나 궁금하더라고요. 정말 누구한테 배우신 거예요? 기왕 배우실 거면  참신하고 유익하게 ‘며느리를  편으로 만드는 ’,  이런  배우시는  어떠세요?
며느리 남편 : 엄마!   이겨. 조목조목  맞는 말이라 엄마는  말도 없잖아요. 그냥 재한테 시비를 걸지 마세요.
시어머니 :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냐!   터쳐 죽일 셈이냐?
며느리 : (깜짝 놀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머나! 아니.....그럴 생각은 없지만요, 어머니. 굳이  중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게 저는 아닌  같아요. 저는 아직 아이를 키워야 해서요. 그럼 남은 건 누굴까요? 그러니까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행복하게 살아요.


 저렇게 질러 놓고 시어머니를 살펴봤을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폭발할 기미를 보인다면 일단 내뺀다. 싸움의 달인 ‘손자 인정해 병법에 넣었다는 ‘삼십육계 줄행랑이야말로  상황에서  필요한 병법이다. 속이 발랑 뒤집힌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식 이기는 부모 없을 테니 결국 반박할  없는 며느리의 말대답에   것이다.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부모에게 효도할 필요 없으니 불효일까 걱정할  없다. 본인 부모한테나 잘해라.


아, 나는 쥐며느리처럼 하라고 배웠는데.

쥐며느리로 살기 싫다.

잘못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며

처량하게 살고 싶지 않다.


볼따구에 밥풀이나 묻히고

절절한 한을 품고 죽어

처절한 꽃 한 송이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이름도 구질구질하게 며느리 밥풀꽃이라니!


나는 하늘을 훨훨

나는 며느리를 하고 싶다.

시어머니 머리 위에서.

나는 며느리를 계속해도 될까?



 쥐며느리로 살라고 가르치는 내 윗대의 쥐며느리들도 싫고, 내가 쥐며느리가 되는 것도 싫다.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나도 어느 집 귀한 딸을 데려다 너도 쥐며느리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게 될지도 모를 미래다. 그건 상상만 해도 두렵다. 나도 그런 거지 같은 가르침을 주게 될까 봐.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한다. 너는 분명 우리 엄마처럼 안될 거라고. 더 훌륭한 시어머니가 될 거라고.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남편이 그렇게 말할수록 더 불안하다. 오히려 저 호언장담이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이름표를 달고 더 뾰족한 창이 되어 나를 찌를 것만 같다. 더 든든한 방패가 필요하다. 딸을 둔 친한 언니에게 나의 이런 불안을 털어놓자 언니가 말했다.


“걱정 마. 우리는 쥐며느리로 살라고 배웠어도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기를 쓰잖아. 그런데 우리들은 이제 딸들을 그렇게 안 키우잖니?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당당하게 맞서 싸우라고 가르치지. 그러니 혹시나 네가 너희 시어머니 같은 실수를 해도 너의 며느리는 너처럼 참지 않을 거야.”


 언니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다. 나의 며느리는 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시어머니 같은 실수를 못할 것이다. 두 발을 쭉 뻗고 자야지. 그렇게 안심을 하고 나니 의문 하나가 내 옆에 누워 빼꼼히 쳐다본다.


‘아, 너희 시어머니가 그런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 것은 네가 참았기 때문이야? 네가 더 치열하게 맞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니?’


 의문의 뒤를 따라온 반성이라는 놈이 슬그머니 다가와 마빡을 후려친다. ‘내 잘못이구나!’ 그렇다고 시어머니를 쉽게 용서할 수는 없다. 시어머니를 용서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땅의 아들, 딸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 너희는 모두 소중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부당한 일은 남에게 시키지도 말고 당하지도 말라고. 혹시 누군가 너희에게 부당하게 굴거든 치열하게 맞서 싸우라고. 그러지 않는다면 그 부당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너의 두려움을 먹고 몸뚱이를 키워나갈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쓴다.

 이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나는 나의 시어머니와 같은 실수를 못할 거라는 믿음이 생기면, 어쩌면 시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딸들은 우리보다 더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길 바란다.

그 딸과 짝을 이룬 소중한 아들도

아름다운 쌍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길 바란다.

나의 머리 위에서.

더 푸른 하늘을.






아내가 SNS에 올린 글이다.

댓글을 달았다.


응원합니다.

나는 며느리 계속해주세요.

훨훨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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