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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l 09. 2020

어머니, 120년만 기다려 주세요.

26년 죽어라 일한 걸로는 꿈도 못 꾸네요. ^^;;;

 나는 방문 교사다. 제법 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어머니들의 입소문만으로 수강생이 -내 입장에서는 저절로(^^;;)- 모집되기 때문에 따로 홍보를 하진 않는다. 대신 어머니들이 만족하실 만큼 저렴한 수업료를 받는다. 평생 가난했던 나는, 가난한 내가 내 아이를 시킬 수 있는 정도의 금액만 받고 수업을 한다. 오로지 내가 혼자 정한 나만의 기준이다.

‘이 정도 퀄리티의 수업을 내 아이한테 시킬 때, 나라면 이 정도는 낼 수 있겠다’ 싶은 금액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수업료를 받는다.

 수업을 한번 시작하면 몇 년씩 하는 편이라 어머니들과도 정이 쌓인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러하듯 자주 얼굴을 보고 집으로 오고 가다 보면 자연스레 속마음도 이야기하게 된다. 한 어머니가 옆 단지 새 아파트로 분양을 받아 가시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선생님도 저희 단지로 이사 오세요. 제가 새 단지에서 팀을 좀 만들어 볼게요.”

“아! 어머니, 저도 정말 정말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아파트로 가려면 120년은 더 일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오래는 못 살 것 같아요.”


그 어머니도 나도 슬프게 박장대소를 했다. 고작 26년 동안 죽어라 일한 것만으로는 단지 꿈꾸는 것도 죄가 되는, 그대의 이름은 2020년 서울의 아파트다.

어젯밤에는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다 했다.


“자기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일을 쉬지 않고 정말 투잡 쓰리잡 뛰면서 죽어라 일했거든.”

“알지.”

“나는 명품 백, 명품 신발, 명품 옷도 단 한 번 사본 적이 없어. 그런 건 갖는 걸 꿈꿔 본 적도 없어.”

“알아.”

“심지어 나는 화장을 안 해서 화장품도 싸구려 기초 화장품만 샀어. 옷도 보세 옷만 계절별로 한 두벌 있는 게 다야.”

“그렇지.”

“나는 지난 26년간 정말 쉬지 않고 일했어. 저축도 성실하게 했고 주식이나 유흥으로 돈을 탕진해 본 적도 없어. 남들보다 크게 못 벌지도 않았어. ”

끄덕끄덕.

“나는 큰돈이 들어가는 취미생활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어.”

‘알지요.”

“그런데 왜! 나는 낡은 20평대 아파트 조차 꿈도 꿔 볼 수 없는 걸까?”

 “음..”

“그렇게 30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만 한 노동자가 20평대의 낡은 아파트조차 꿈꿀 수 없는 사회가 정말 건강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거야?”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건데. 대체 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걸까?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궁금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의 물음을 던졌다. 지인들 중 절반 이상은 아파트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때 부모님이 사주셨단다. 나머지 사람들은 소위 대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영끌 대출로 살 수 있었단다.

 나는 평생을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해도 찢어질 듯 가난했던 부모에게 태어났다. 영혼까지 끌어다 대출을 받게 해 줄 대기업에 다니는 신분도 아니다. 그래서 낡은 아파트도 꿈꿀 수 없다. 낡아도 깔끔하게 도배를 하고, 베란다에서 빨래를 탁탁 털어 널고, 작은 화분에 물을 주며 잘 자라라고 속삭이고, 깨끗하게 청소를 한 곳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부지런히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내 남편과 아이의 저녁을 준비할 소박한 내 집, 내 공간을 꿈꿀 수 없다.


 언감생심. 120년을 노예처럼 일해도 얻을 수 없는 대규모 새 아파트 단지 입성을 꿈만 꾸는 것도 죄악처럼 느껴진다. 단지 50년 성실하게 일하고, 주택가의 낡은 나 홀로 아파트라도 좋으니 내 집을 좀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게 정말 그렇게 큰 죄를 짓는 것일까?



우울할 땐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 강 건너 아파트를 구경한다. 침만 좔좔 흐르는 그림의 떡이다. 더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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