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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l 27. 2021

허리 부러진 아줌마의 하소연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가다

지난 목요일 새벽.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가 극심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전기충격기로 허리를 공격하는 줄 알았다. 자고 있던 남편이 나와 진통제를 찾아주었다. 하지만 진통제를 먹고 누웠다가 일어날 수 없었다. 허리는 점점 더 뻣뻣하고 고통스러웠다.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텐데...’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만약 저 사람이 지 몸뚱이는 소중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남의 몸이라고 저렇게 쉽게 말하는 거라면 남은 힘을 다해 멱살을 잡고 패대기라도 치고 싶은 순간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자기 몸이 아팠다면 더 방치했을 사람이다. 그나마 남의 몸이라고 진통제라도 찾아주는 성의를 보였으니 이 상황을 오로지 나 혼자,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이미 월요일 오후부터 허리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다니고 있던 차였다. 월요일 오후 수업을 하며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섰다. 그런데 일어설 수 없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 심술궂은 요정이 나타나 저주라도 퍼붓고 간 것인지 갑자기 새우처럼 굽어버린 등을 펼 수가 없었다. 학부모가 수업 내용에 대해 묻고 계신데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해 안간힘을 쓰며 쩔쩔매고 있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바로 동네 병원에 갔다. 담당의사는 엑스레이 결과를 보더니 말했다.

“4번, 5번 디스크에 약간 문제가 있네요. 정상보다 많이 가까워져 있어요. 그런데 지금 허리가 펴지지 않은 것은 디스크 문제라기보다는 근육 문제입니다. 근육이 놀라 통증을 느끼는 거니까 주사한 대 맞고 가세요. 이 주사 맞고도 더 아프면 디스크 문제니까 그땐 상황이 더 커집니다.”


별거 아니라는 투였다. 그래서 주사를 맞고 도수치료를 받고 왔다. 하지만 수요일에는 허리를 더 움직일 수 없었다. 뻣뻣하게 굳어 양말도 신을 수 없고 화장실에 가기도 불편했다. 목요일은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다. 걱정에 걱정을 하며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진통제를 먹고 누워도 허리는 점점 아파오며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힘이 들어가 근육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경련이 일어났다. ‘이 주사 맞고도 더 아프면 디스크 문제’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디스크가 터진’ 상황인 것일까? 남편에게 119에 전화를 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 사람은 짜장면 집에 주문 전화도 못하는 사람이다. 전날 밤에도 허리가 아파 짜장면을 시켜먹자 했더니 전화하기 싫다며 앱을 설치한답시고 10분이 넘게 낑낑대는 것을 보다 성질이 급해져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해봤자 복장 터질 소리만 또 듣게 될터 그냥 스스로 하는 것이 더 낫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내 손으로 119에 전화를 하고 구급차를 불러 누운 채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내가 너무 멀쩡해 보였는지 응급실에서는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외래 진료를 볼 수 있으니 기다렸다 외래진료를 보라고 권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담당의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또 근육 경련이 시작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이내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치 누가 스위치를 누르면 내 허리에 전기가 오는 것처럼 근육들이 저절로 힘을 주기 시작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경련이 심장이나 다른 중요한 장기에 생긴다면 정말 즉사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다 반실신 상태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그 와중에 입원 수속을 해야 한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지. 경련이 풀리길 좀 기다렸다가 해주면 좋으련만. 떡실신이 된 사람에게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며 내 콧구멍과 입안을 쑤시고 옷을 벗겨 엑스레이를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원망스럽긴 하지만 이해해야겠지. 그 사람들이야 내가 얼마만큼 고통스러운지 알 길이 없고, 내 경련이 10분이 될지 하루 종일이 될지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 없었겠지. 그런 마음으로 이해해야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쉽다.

근육경련이 좀 풀릴 즈음. 어느 병실로 나를 옮겨 주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되어 있어야 한단다. 나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새벽, MRI를 찍고 늦은 오후에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뼈나 디스크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단다. 다만 4번, 5번 디스크에  균열이 가있고 그래서 근육에 더 무리가 간 것으로 보인단다. 디스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근육이 더 힘을 썼고 그래서 근육이 너무 힘들어 파업을 한 것일까? 아, 참 요란한 파업이다.

의사는 그냥 그렇게 갑자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며 뭔가 허리에 무리가 갈만한 이벤트가 있었을 것이란다. 그러면서 넘어진 적이 있는지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가 삐끗하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뭘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밤에 시술을 하기로 하고 병실에 누워 진통제를 맞으며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환자가 입원을 하는지 갑자기 소란스럽다. 새로  환자는 할머니다.  앞자리에 있는 아줌마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 같지 않게 수다 한마당이 벌어졌다. 어쩌다가 수술을 하게 되었는지. 새로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손주를 안아주기도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하소연을 하셨다. , 그러자 지난주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들이 거실을 가로질러 다다다 뛰어오더니 펄쩍 뛰어와 안겼다. 이제 제법 커진 아들을 받기 버거웠다. 아들을 받다가 넘어질 뻔했는데 하필 넘어지는 곳이 테이블이 있는 곳이라 아들이 머리를 박을까  죽을힘으로 버텼다. 우지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의사가 말한 허리에 무리가  이벤트는 바로 그거였나 보다. 그래도 아들을 지키고 차라리  허리에 금이 가길 천만다행이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11월에 쓴 글이다. 쓰다가 포기했다. 뭐랄까.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댓글이 달릴까 봐 두려운 마음. 하핫.

그런데  빌어먹을 상황이  반복되었다. 길을 가다 웅덩이에 빠져서 허리를  다치고 근함을 느끼며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젖은 빨래를 옥상에 널려고 들다가 주저앉아버렸다. 또다시 병원에 실려와 꼬박 2주를 누워있다. , 아픈 허리보다 온갖 걱정과 잡념에 치여 죽을  같은 시간이다. 지금은 재시술을 받고 척추보조기를 하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누워있다. 아이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아이와 공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신나게 깔깔대고 웃던 시간들이 그립다.  일상을 다시 찾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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