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와 뜨거운 아메리카노
낯선 곳에서 이것만 한 게 있나요
여행지에서의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커피가 나오는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좋아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좋아하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97년 어느 날이 떠오른다.
호주 브리즈번의 퀸즐랜드대학교에 간적이 있다. 브리즈번은 여행지로 유명하지만 우리에게는 처음이었다. 자격시험을 보러 간거라서 시험장소를 알아두려고 전날 학교에 들렀다.
저녁 햇살이 거의 서쪽 끝에 걸려있던 시간이었다. 숙소를 예약한 것이 아니니 뭐든 찾아보려고 둘러봐도 대학 근처여서인지 별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난감한 그때 한 젊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흰 얼굴에 조용하고 훈남으로 보이는 그에게 다가갔다. 실례한다고, 나름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걸어오던 그의 표정이 활짝 펴지며 네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저리도 밝게 바뀔까. 꽃 피는 듯한 그의 얼굴에 blossom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친절한 대답 한마디가 숙소 잡을 생각에 조급해진 마음을 놓이게 했다.
이 대학 근처에 숙소를 찾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도 잘 모르긴 하는데 아마 저 아래쪽으로 가면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잘 몰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어쨌거나 그가 말한 쪽으로 갔다. 작은 모텔이었는지 숙박업소가 눈에 들어왔다. 조용한 동네였고 나름 깔끔했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문밖으로 나오니 식빵과 토스터, 버터와 잼, 우유와 주스 정도가 차려진 간소한 식탁이 보였다. 작은 마당으로 나가는 밝은 마루에서 구운 식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아침을 해결한 기억만 있다. 밤에 비가 내렸었는지 아침 공기가 신선했고 좁은 마당에서 자라는 붉은색 꽃잎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 후로 여행지 아침식사는 이런 가벼운 게 좋다. 여유롭게 골라 먹을 수 있는 호텔의 조식이라도 토스트 한 조각에 커피는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발전한 것이 비 오는 점심, 카페에서 먹는 뜨거운 고기 파이와 아메리카노이고 밝은 날엔 아삭한 양상추와 닭고기가 듬뿍 들어있는 샌드위치와 커피가 좋다.
나는 대단한 커피 홀릭도 아니고 토스트 같은 빵 종류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지만 간단한 식사로 이 둘의 조합일 때가 좋다. 먹으면서 웃음이 날 만큼.
추운 겨울 아침, 낯선 골목의 카페에서 먹는 갓 구운 토스트와 커피,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