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차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 한방차

by 올리가든

서울에 인사동이 있다면 수원에는 행궁로가 있다. 수원 화성행궁 앞에서 팔달문까지 죽 이어지는 골목이다. 공방과 찻집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화려함은 없지만 들어가 차나 한잔하자 싶고 마음이 느려지는 듯한 동네다.


행궁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소박한 찻집. 실내에는 4인용 테이블이 몇 세트 놓였고 주방 옆 출입문 쪽으로 자잘한 수공예품도 팔고 있었다. 나에게 익숙해진 프랜차이즈 카페의 세련된 인테리어나 부드러운 쿠션이 허리를 받쳐주는 안락한 소파는 이곳에 없었다. 평범한 화분들이 창가 쪽 햇볕에 의지해 자라는 이 집은 어쩌면 옛날식 다방을 더 닮았다. 종이를 비닐에 끼워 넣은, 앨범으로 쓰일듯한 작은 메뉴판을 받아 들고 친구와 나는 전통차를 마실까 생각했다. 대추차는 어떨까. 이런 집은 쌍화차를 먹을 수도 있을까. 안 될 거라 짐작하면서도 혹시 쌍화차가 되는지 물었다. 쌍화차는 없고 대추차에 한방재료가 들어가니 비슷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추차가 넉넉하게 한 그릇씩 나왔다. 맛이 괜찮았다. 찻물이 좀 더 따끈했더라면 좋겠다 싶었지만.


요즘 직장에서는 보안 시스템이 있어 휴일에 당직을 서는 일도 없겠지만 예전에는 일요일마다 순서를 정해 당직 근무를 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을 체크하고 오전과 오후에 사무실을 돌며 아무 탈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휴일인데도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직원들이 있으면 순찰 돌 때 좀 낫지만, 아무도 없는 넓은 사무실을 문 열고 들어가 살피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관리자와 여직원이 한 조로 낮 근무를 하고 밤에는 남자들끼리만 2인 1조로 근무했다. 나이 드신 분과 당직을 서면 사무실 순찰하는 일은 여직원 몫이 되었다. 어쩌다 젊은 남직원과 한 조가 되면 그분이 흔쾌히 혼자 순찰을 해주었다.


나는 갓 입사한 노랑 병아리였다. 선배 남직원과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선배는 차 한 잔씩 먹고 하자며 사무실 앞 다방에 전화를 했다. 다방 종업원(레지라고 불렀던)이 금방 차를 가지고 왔다.


찻잔에 대추 채 썬 것과 잣, 호두, 땅콩 등을 듬뿍 넣고 보온병에서 뜨겁고 검은 쌍화차를 따라 부었다. 한약 냄새가 진하게 났다. 가져온 작은 계란을 깨서 노른자만 찻잔으로 미끄러지듯 떨어뜨렸다. 검은 갈색 찻물에 노른자가 반쯤 가라앉아 동동 떴다. 선배는 이 집 쌍화차 괜찮다며 어서 들어보라고 했다. 한약은 먹어 봤지만 날계란이 들어간 이런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노른자가 먹기 어려우면 저어 먹어도 된다고 했다. 쌍화차의 달고 화아한 맛 때문에 노른자는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맛의 신세계였다. 커피에 비할 바 아니었다. 고명이 얼마나 충실했던지 차 수저로 떠먹어도 계속 남아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다방에 가서 쌍화차를 먹게 되었다. 간장 종지 같은 노란 갈색 찻잔에 나온 것은 쌍화차가 맞는데 맛은 많이 달랐다. 요즘 약국에서 공짜로도 주는 병에 든 쌍화차 맛 정도였다. 대추나 너츠도 아쉬웠고 노른자를 넣었어도 밍밍했다. 다른 집에 가서 한 번 더 먹었던 것도 역시 비슷했다. 함께 갔던 사람에게 쌍화차가 원래 이런 거냐고 하니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내가 처음 맛본 쌍화차는 메뉴보다 업그레이드된 거였나 보다. 선배가 그 다방의 단골이었던지 차를 배달하는 사람과 친분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기억 속 쌍화차는 달콤 쌉쌀하며, 맛있는 고명이 가득 들어있는, 노른자 동동 떠있는 따뜻한 겨울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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