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시장에 있는 순댓국밥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뚝배기에 그득 담긴 국밥을 후후 불며 먹는 사람들. 가족이거나 친구의 무리도 있지만 그중 많은 이들이 부부다. 마주 앉아 뜨거운 순댓국을 말없이 먹고 간다. 보얀 국물만큼이나 푹 삶아져 부들부들해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을 아내와 남편들.
나는 고기만 있는 것을, 남편은 순대만 들어간 국밥을 주문했다. 이 집은 고소하고 졸깃한 내장 부위가 유난히 맛있다. 남편의 뚝배기에 당면만 많이 넣은 서울 순대를 보며 오래전 집에서 만들던 '진짜 순대' 얘기를 했다.
집에서 만든 순대는 돼지의 대창을 사용했다. 창자는 밀가루를 뿌려가며 바락바락 주물러서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씻어준다. 대창 준비가 끝나면 이제 맛을 내는 것은 순대속이었다. 김장할 때 쓰는 큰 양푼에다 창자에 넣을 속 재료를 준비했다. 두부를 베 보자기로 꼭 짜서 으깨고 대파와 부추를 다져 넣었다. 불린 당면과 데친 숙주, 돼지 냄새를 없애려고 생강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신선한 돼지 피를 이 재료들과 잘 섞으면 속재료는 다 되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창자 한끝은 실로 꽁꽁 묶고 다른 쪽 구멍에 깔때기를 대고 속을 꼭꼭 넣어 주었다.
돼지 창자를 씻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공동우물에서 했지만 벌써 추워진 초겨울 저녁이라 속 재료를 만들고 넣는 작업은 방에서 해야 했다. 방안은 온갖 재료의 냄새가 섞여 후끈한 열기가 올랐다. 이 일은 동네 아주머니 두셋이 맡았다. 마당으로 나가 임시로 만든 아궁이에 솥을 걸고 순대를 삶아 내었다. 통통하게 익은 순대를 썰어 도마에서 바로 집어 먹던 맛. 순대라는 것의 맛을 처음 알았다.
순대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날은 우리 집 돼지가 죽은 날이어서 생각지 않게 순대를 만들어야만 했다. 키우던 어미돼지가 전날 밤에 혼자 새끼를 낳았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아버지께서 살펴 새끼를 받곤 했지만, 낮까지는 별다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작스럽게 밤에 낳느라 어미 혼자서 죽도록 고생을 했던 거였다. 이른 아침에야 발견했을 때는 기진맥진한 어미와 새로 태어난 새끼 세 마리가 곁에 있었다. 바닥에 깔린 볏짚 위에 남은 핏자국을 보고 '어이구... 혼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어른들은 혀를 찼다. 어린 마음에도 어미가 불쌍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어미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점심때쯤 죽고 말았다.
어미돼지의 죽음은 아버지에게 기가 차고 속상한 일이었다. 경제적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키우던 동물이 갑자기 죽었으니 몹시 언짢았을 것이다.
"몇 년 동안 돼지를 키웠어도 내 이런 일은 없었는데... 자네가 동네 사람들 몇 불러서 뒷산 어디에든 묻어 주게."
동생뻘 되는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속상하죠. 근데 병이 든 것도 아니고 새끼 낳다가 그런 건데... 그러지 말고 형님, 우리가 할 테니 이놈을 잡읍시다." 고기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보기도 싫으니 묻어. 파묻으라고."
"그래도 우리가 하면 되는데…"
거듭된 동네 사람들의 설득에 아버지는 귀찮은 듯 말했다.
"... 나도 모르겠으니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
결국, 어미돼지를 잡게 되었다. 갑자기 분주해졌다. 마당에는 흙벽돌을 몇 개 놓아 아궁이가 급히 만들어지고 큰 무쇠솥이 걸렸다. 우물에서 물을 퍼 날라 끓이고 숫돌에다 크고 작은 칼을 갈았다. 이웃 사람들이 이런저런 그릇들을 가져오고. 마당 한쪽에 붙어있는 텃밭에서 돼지를 잡는 어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두워지자 여러 개의 호야등에 불을 붙여서 벽에 걸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나누었다. 우리 몫의 한 덩이는 새끼줄로 묶인 채 흙벽에 걸려 있었다.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추운 곳에 걸어 놓는 것이다. 몇몇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의 수고로 어미돼지 일은 그날 저녁 늦게야 마무리되었다.
선지를 받아 순대를 만들면서 선홍색 돼지 피에서 느껴지는 역겨움도 있었다. 그것이 먹을 만한 음식이 되었을 때, 붉은 피를 보던 두려움이나 어미돼지에게 느꼈던 슬펐던 마음 따위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순대 만드는 어른들을 거들면서 '진짜순대'의 기막힌 맛을 알게 된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