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는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던 소리와 같다. 어릴 때는 집에서 콩나물을 키워 먹었다. 콩나물 키우기는 쉽다. 작은 콩나물 콩을 불려 시루에 넣는다. 메주를 쑤는 흰콩도 괜찮다. 검은콩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 검은 콩나물을 키우기도 한다. 우리가 콩나물을 사 올 때 콩나물 대가리에 언뜻 붙어있는 껍질이 검은 것이면 검은콩 콩나물이다.
둥글넓적한 황토색 플라스틱 함지박 위에다 시루를 감당할 만큼의 굵은 나무 두어 개를 받친다. 불린 콩을 담은 시루를 올려놓고 바가지로 매일 물을 퍼준다. 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 나 있으니 물을 퍼붓자마자 아래 함지박으로 빠진다. 그러면 그 물을 다시 퍼서 콩에 부어주는 것을 반복한다. 하루 이틀 지난 콩에서는 올챙이 꼬리 나오듯 뾰족한 싹이 튼다. 그 뿌리가 길어져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손등에다 물을 받쳐서 뿌려야 한다. 그냥 물을 붓게 되면 콩들이 다 뒤집힌다.
시루안의 콩은 어느 정도 지나면 저 스스로 뿌리가 아래로 내려가고 콩나물 대가리는 위로 향하는 때가 온다. 그때부터 물 주는 것은 쉽다. 막 퍼줘도 되고 많이 줘도 된다.
물을 붓자마자 바로 아래로 빠지는 게 콩나물 키우기지만 신기하게도 아침저녁이 다르게 자라서 빼곡하게 들어찬 콩나물시루가 된다. 이 정도 자란 콩나물은 물을 퍼부을 때마다 쏴 하는 소리가 좋다. 한여름에 가늘고 빽빽한 소나기가 내릴 때도 이런 소리가 난다.
이때부터는 어린 콩나물을 뽑아 콩나물죽을 끓이면 맛있다. 적당히 자라면 국도 끓이고 무쳐 먹고 해야 한다. 콩나물은 오래 두고 키워 먹는 것이 아니다. 너무 자라면 이내 잔뿌리가 무성하게 나기 시작하고 억세져 맛이 없으니 말이다.
결혼 전 셋집을 전전하며 살 때였다. 주인집에는 은퇴자 부부가 몸이 불편한 삼십 넘은 딸과 함께 살았다. 날이 좋으면 딸의 이동식 침대를 밀고 현관에 나와 햇볕을 쬐기도 했다. 주인집은 조용한 편이고 나는 출퇴근하느라 같은 울타리 안에 살아도 자주 마주치진 못했다.
그 겨울, 내가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 고열로 밤잠을 설치며 혀가 꺼멓게 마를 정도가 되었다.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으면 나을 것 같았지만 일어나서 뭘 만들 수도 없었다. 혼자 자취를 하다 보면 이럴 때 눈물 난다. 직장도 결근하고 모임은 취소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친구들은 걱정해 주었다. 그렇다고 나이 드신 엄마에게 전화해서 아프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물만 마시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누워있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연 내 꼴을 본 주인집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안 그래도, 어째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통 안 들려서 와 봤지. 어떡하나, 뭐라도 먹어야 할 텐데.”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이것 조금 먹어봐요. 감기 떨어지라고 내가 끓여봤어.”
동그란 양은쟁반에 받쳐 온 큰 대접에는 죽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쫑쫑 채를 썬 잘 익은 배추김치에 여린 콩나물 넣어 푹 끓인, 살짝 매콤하고 뜨거운 콩나물죽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아픈 와중에 그것이 그리도 맛있을 줄이야.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오고 목소리가 트였다. 콩나물죽 한 그릇에 내 몸은 신기할 만큼 빠르게 기운을 되찾았다. 다음 날 저녁에는 양은쟁반에 귤을 받쳐 들고 아주머니를 찾아갈 수 있었다.
몸이 으스스할 때면 콩나물죽이 생각난다. 그것은 몸을 치유하는 음식이고 아프고 외로운 자를 감싸 안는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