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시루떡

감사와 나눔의 시간

by 올리가든

수원 못골시장은 팔달문 근처 9개 재래시장 중 먹거리 시장으로 이름 나 있다. 반찬가게, 정육점, 떡집. 채소가게, 어물전, 장아찌 등 별별 먹거리들이 다 있다. 이른 아침에 시장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떡집이다. 무지개떡, 개피떡, 백설기, 모시송편, 무시루떡, 호박떡, 팥 시루떡……. 시루에서 막 꺼내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떡을 식히고 있다.


농사짓는 시골에서는 떡을 자주 해 먹었다. 맛있고 든든한 간식이었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기본은 한 말이었고 좀 넉넉하게 하면 두말씩 떡을 만들었다. 추석에는 송편을 설에는 가래떡을 뽑아왔지만 간식으로는 시루떡이었다. 시루떡 중에도 검은콩을 많이 넣은 깨끼 떡, 말린 호박을 넣는 달큼한 호박 시루떡, 삶은 팥을 켜켜이 뿌려 넣고 찌는 팥 시루떡이 맛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언제나 팥 시루떡을 했다. 엄마는 쌀을 빻으러 방앗간에 가면서 우리에게 황토를 파다 놓으라고 하셨다. 마을 중심에 넓은 풀밭이 있고 그 풀밭 가운데 은행나무가 있었다. 아이 둘이 양팔을 활짝 벌려야 다 안을 정도로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은행나무 때문인지 그 풀밭을 ‘은행 말랑’이라고 불렀다. 나무 근처 한 귀퉁이에 붉은 흙이 단단하게 박혀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동생과 때로는 언니와 함께 황토를 파러 다녔다. 호미가 담긴 둥그런 팥죽색 플라스틱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갔다. 황토는 주변의 검은 갈색과는 확연히 다른 주홍색 흙이었다. (지금도 드물게 황토가 박힌 땅을 보게 되면 반갑고 귀해서 눈이 번쩍 뜨인다)


파온 황토는 마당 입구에 양쪽으로 몇 줌씩 놓았다. 요즘 이벤트 할 때 촛불로 길을 만들어 놓듯이 사립문 양쪽에 빨간색 흙을 놓는 것이었다.

"이 빨간 흙을 왜 뿌려?" 궁금한 걸 못 참으니 엄마께 물어보았다.

"귀신을 쫓고 정갈하게 하는 거지."

어린 내 눈에도 시커먼 다른 흙보다 곱고 매끄러운 황토가 그렇게 보였다. 부정한 것을 막는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질그릇으로 만든 큰 떡시루는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적당하게 자른 깨끗한 볏짚으로 시루 구멍 막이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를 한 켜 두툼하게 뿌렸다. 그 위에 삶은 통팥을 술술 뿌려주었다. 이렇게 쌀가루와 팥을 번갈아서 계속 채웠다.


쌀가루는 눈보다 고왔다. 어릴 때는 무슨 가루만 보면 왜 그렇게 만져보고 싶었던 건지. 밀가루도 그렇고 모래 장난도 얼마나 좋아했던가. 보드랍고 미세한 입자의 촉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남매들은 엄마가 안방 윗목에서 떡시루 안치는 것을 목을 빼고 구경했다. 이 작업이 중간 정도 지나면

"나도 한번 해볼래." 하면서 바싹 다가앉았다.

"그럼 흘리지 않게 잘 뿌려 봐." 골고루 뿌리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젠 됐으니 나가 놀아. 떡 다 되면 부르마." 동네로 나가 애들과 놀면서 자랑을 했다.

"우리 떡 한다아." 요즘에는 우습겠지만 떡 먹는 게 자랑이던 때였다.


시루떡을 안칠 때는 요령이 있었다. 쌀가루를 너무 두껍게 뿌리면 맛이 없었다. 적당한 두께로 고루 뿌려야 했다. 팥도 넉넉히 그러나 적당히 넣었다. 사 먹는 팥 시루떡은 쌀은 많고 팥이 적었다.


무거운 떡시루를 부엌으로 들고 나르는 일은 아버지가 하셨다. 솥에다 시루를 걸어놓고 마무리로 시룻번을 발랐다. 시룻번은 남겨놓은 쌀가루를 적당히 물에 개어 만드는데 이것의 용도는 시루와 솥의 틈새에서 김이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었다.


아궁이에는 불이 빨갛게 타고 검은 무쇠솥에 얹힌 시루에서는 김이 펑펑 솟아올랐다. 부엌 안이 온통 뿌예졌다. 따다닥 작은 소리를 내며 타는 불길이 더 밝게 보이고 공기는 훈훈해졌다.

떡이 충분히 익으면 더 이상 불을 때지 않고 뜸을 들였다. 기다렸다가 시루 뚜껑을 열어놓아야 했다. 김이 빠지면 다시 무거운 시루를 방으로 들여놨다. 양이 적을 때는 시루째 조심스럽게 뒤집어서 떡을 쏟아냈다. 그렇지만 몇 말이나 할 때는 시루 안에서 긴 부엌칼로 떡을 갈라놓았다가 식으면 조금씩 들어냈다.


엄마가 댕댕이 덩굴로 손수 짜 만든 넓은 채반에다 손바닥만 하게 자른 떡을 식혔다. 식구들이 먹기 전에 떡을 서너 쪽씩 두꺼운 기름종이에 쌌다. 이런 것을 여러 개 만들어서는 타작한 짚동가리 위에, 쌀과 곡식을 두는 광에, 사랑방에 쌓아놓은 볏가마니 짝 위에, 부엌 살강에도 올려놓게 했다. 가을 추수를 끝마친 것에 감사하는 의미였다. 그뿐 아니라 나와 동생은 이웃에 떡을 날라야 했다. 옆집, 뒷집, 아랫집.

시골에서는 대문 없이 살았고 있어도 잠그지 않았다.

마당으로 들어가서는 소리를 지른다. "야유우~"

사투리여서 요즘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소린가 할 거다. "이거 받으세요."쯤 된다.

그러면 안에서는 창호지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구유?" 한다.

"엄마가 떡 갖다 드리라고 해서유."

"떡 했어? 잘 먹는다고 전해드려." 갖다 드리는 것도 부끄러워서 얼른 주고 뛰어나왔다.


동생과 나는 각자 서너 집씩 돌며 떡을 돌렸다. 떡을 다 돌리고 집에 오면 팥시루떡은 뜨거운 김이 가라앉고 먹기 좋게 식어있었다. 간이 적당하고 쌀과 팥의 양이 딱 맞는 보드랍고 쫀득한 그 맛. 나에게 팥시루떡은 먹으면서도 웃음이 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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