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묵

거친 것에서 나온 보드라움

by 올리가든

내가 열두 살이던 가을, 엄마를 따라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동네 뒷산이 아니라 십 리를 걸었으니 다른 동네까지 원정을 간 셈이었다.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쏙소리라고 하는 졸참나무 작은 열매보다는 밤처럼 알이 큰 상수리 열매가 그중 좋았다.

잘 익은 도토리는 바람이 불면 저절로 쏟아져 내리고 사람들이 나무를 흔들어도 떨어졌다. 그날 우리가 만난 것은 누가 흔들어 본 적도 바람에 떨어져 내리지도 않은 온전히 잘 익은 중키의 젊은 상수리나무였다. 나무 근처에 보이는 적당한 돌덩이를 주워 들고 둥치에 대고 슬쩍만 쳐도 우수수 영근 열매들이 쏟아져 내렸다. 깍쟁이에서 막 떨어져 나온 허연 부분은 아직도 촉촉하게 습기가 배어있었다. 머리 위로 투두둑 떨어지면 꿀밤을 여러 대 맞는 듯 아프지만 줍는 재미에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한 그루에서 금세 두어 말을 주웠다. 참나무 밑이라고 항상 도토리가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우리는 횡재를 한 셈이었다. 웬만하면 엄마는 머리에 이고 나는 손에 들고 왔을 테지만, 그날은 양이 많아서 나도 자루에 나누어 이고 산길을 걸어왔다. 나는 임질이 익숙지 않아 도토리 자루가 자꾸 머리에서 흘러내렸다.


도토리는 며칠을 말렸다가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다. 큰 시루 안에 구멍 막이로 넓적한 나뭇잎이나 짚을 깔고 빻은 도토리를 채워 넣은 다음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이 골고루 물을 부었다. 처음에는 검붉은 물이 시루 밑으로 흘러나왔다. 너 댓새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을 주다 보면 차츰 물 색깔은 옅어졌다. 도토리의 떫고 강한 맛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쓴맛이 빠진 것을 성긴 자루에 담고는 넓은 양푼 안에서 물은 부어가며 손으로 힘껏 치댔다. 자루에서 나오는 뿌연 물의 농도가 어느 정도 맑아질 때까지 계속되는 이 일은 팔과 손목의 힘이 필요했다.


이런 일은 동네 우물에서 하곤 했는데 치대는 작업은 큰언니들이 도왔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곤 했다. 이제 그 물만 그릇에 따라놓고 가만히 놓아두면 아래로 앙금이 가라앉는데 이것이 도토리 전분이었다. 윗물은 따라 버리고 전분만 긁어내어 두꺼운 기름종이를 깔고 잘 펴서 말렸다. 도토리 전분이 완성되었다. 보관했다가 언제든 물을 넣고 잘 저어 끓이면 묵이 되었다.

묵판에 부어놓고 묵이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손바닥을 활짝 펴서 살포시 두드려 보곤 했다. 엄마가 보면 ‘먹을 건데 자꾸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보들 거리면서도 탱글탱글한 감촉이 자꾸만 만지고 싶었다.

검고 보잘것없는 묵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속성으로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지는 음식이 아니었다. 도토리묵은 집에서는 간식이고 들에 나가면 새참이 되었다.


엄마가 여든이 되던 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만큼 중한 병을 앓았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나는 주말에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엄마에게 내려가곤 했다. 경미한 뇌졸중 수술도 받았기에 조금은 어린애가 된 것도 같았다. 부지런하고 총명하시던 엄마가 저렇게 약해지다니…….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휠체어에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 뿐.


함께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길가에 잠시 휠체어를 세우고 마주 앉았다.

"엄마. 우리 비랭이길에서 도토리 주웠던 거 생각나?”

일 년 내내 병으로 시달리며 쇠약해진 팔십 노인이 그걸 생각해 낼 수 있을까.

"그럼 생각나지. 그해 도토리 참 많이 주웠지. 하도 많아서 어린 너도 목이 휘청하도록 자루를 이고 왔지. 참 어린것이 그걸 이고 끝까지 걸어왔지."

나의 의심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엄마는 그날의 기억을 망설임 없이 회상했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와의 작은 추억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름 내 시골집 마당에 붉던 배롱나무는 가을 깊어지며 매끄러운 수피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던 배롱나무가 길 쪽으로 나 있는 창을 가려 답답하다고 했다. 종일 누워있으니 집 앞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이라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 뜻대로 나무는 베어지고 밑동만 남았다.


다음 해 아카시아가 짙은 향기를 흔들던 날, 우리는 이별했다. 함께했던 이야기들만 영혼의 그루터기로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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