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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가든 Mar 30. 2021

반드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휴대폰 화면에 ‘아들 군대전화’라고 떴다. 행여 놓칠세라 부리나케 받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서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하지 못했다. 훈련기간을 마치고 이제 막 한 달이 지난, 병아리 이등병. 공병학교 교육을 마치면 일주일 후에는 자대로 들어가야 다.


 “짧게 통화할게요.  이번 주는 전화사용이 통제될 수 있다고 해서 점심시간에 전화했어요.  혹시, 전화 못하더라도 그런 줄 알고 걱정하지 마세요.”

짧게 통화해야 한다는 말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허둥대며 안부를 물었다.

“그래 알았어. 몸은 괜찮지? 건강 잘 지켜라. 무엇보다 건강해야 돼.”   

부모가 걱정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아들이 육군훈련소를 수료하는 날, 공병대로 배치받은 일은 정말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많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점심 먹다가 소식을 듣고 공병대가 뭔지 찾아보느라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공병대가 가장 힘들다는 얘기를 훈련소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면 나았겠지만. 누군가는 거기로 배치되는 사람도 있을 건데 미리부터 그런 말들을 했는지 원망스러운 맘이 들었다. 그날은 아들의 마음을 다독이느라 나의 걱정은 숨겨두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인터넷 폭풍 검색이 시작되었다. 대체 공병이란 게 뭔지. 공병학교 홈페이지 프로그램에는 그 시점에 개설되는 과정이 딱 두 개였다. 장애물운용반M, 장애물운용반E.  과정의 세부내용을 보니 지뢰나 폭발물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 많은 공병 특기 중에 하필 장애물반이라니. 아들의 전공을 볼 때 지뢰보다는 폭발 쪽이 더 연결성이 있을 것 같았다. 입교한 날 학교에 알아보니 역시 폭파병이었다.  걱정만 태산이었다.


‘폭파병’을 연관검색어로 하는 모든 정보를 뒤졌다. 구글, 네이버, 다음. 새벽까지 자리에 누워서도 스마트폰으로 샅샅이 찾아보았다. 최근 것은 거의 없고 오래전에 공병으로 근무하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캐냈을 뿐이다. 공통적인 것은 힘쓰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노가다’라고 했다. 엄청 고생을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날은 말도 하기 싫을 만큼 우울했다. 그래도 군대생활을 해본 남편은 나를 위로하려고 했다. 괜찮을 거라고, 그런 경험이 사회에 나와 도움이 될 거라고. 그래, 그러려니 생각해야지 별도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다만 건강하게 21개월을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바라야지.


북클럽에서 암송했던 시가 생각났다. 멀리서 몸만 성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심정에 더없이 공감했다.

“...... 큰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댓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볕치 플리믄 또 조흔 일도 안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고두현 의 ‘늦게 온 소포‘ 일부)


공병학교 교육 중에 다행히 전화통화가 자유로웠다.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차츰 안심이 되었다. 교육 중이라 이등병의 생활치고는 여유롭다고 했다.

갑자기 한파가 몰려와 매섭던 날, 나는 카페 아미스타에 나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옆 테이블로 여성 다섯 명이 들어오더니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군대전화가 왔다.

“ 아들,  오늘은 뭐했어?.…….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그럼 건물이 무너진 거니?...... 다리도 폭파했니?.……. 그럼 너희들은 폭파 설치하고 도망친 거야?”

갑자기 옆자리가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아들 목소리를 듣는 기쁨에 들떠서 내 소리가 그들에게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폭파했냐고, 무너졌냐고 하는 내 말만 듣고 아들의 소리를 알 수 없으니 아마 그들은 호기심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통화를 마치자 그중 한 얼굴은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들의 목소리는 다시 와글와글 수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육 3주 차에 자대 배치 결과가 나왔다. 전방일 것은 각오한 터였으나 8군단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또 인터넷 검색으로 그곳이 강원도 어디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자식이 군대를 가니 그런 일과는 무관하던 엄마도 군대의 조직이며 위치까지도 알게 다. 엄마의 군대 공부는 집중적으로 밤낮없이 이뤄졌다. 우리 아이가 있는 곳은 어디고 무엇을 하는 곳일까?  


그러나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잘 지내고 오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는. 그런 경험과 시간들이 앞날에 좋은 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자식이 공병이라고 실망하고 폭파병이라고 겁먹고 그러다가 지뢰병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전방이라고 걱정하다가 그래도 산간 내륙지방보다 따뜻하다는 동해안 지역이라고 위안을 받았다.

무엇이 좋고 아닌지는 끝나고 와야 아는 것이고, 살아봐야 아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걱정을 줄이고 건강하고 더 씩씩한 사람 돼서 올 거라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우리는 종종 자기 합리화를 하며 위안한다. 이런 상황들이 다분히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흐를지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견디며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된다.  간절한 기도가 시작된 처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두려움도 떨쳐 버릴 수 있는 희망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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