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신거림
집근처 소아과에서 얀센 백신을 맞았다. 두통, 근육통, 몸살피로감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해열진통제를 한갑 사놓고 약효가 떨어질 때마다 한알씩 까먹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학기말 과제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이틀을 보내니, 거짓말처럼 개운해졌다.
딱 두 시간 먼저 맞은 형이 딱 48시간 정도 아플거라더니, 사실이었다. (정작 본인도 앓는 동안에는 그 말을 못 믿는 것 같았다.)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이, 천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일상 회복이라는 표현이 뉴스 기사에 자주 눈에 띈다. 일상 회복이라니, 달콤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내향적이면서도 외향적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할 때도 있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 남들은 날더러 "의외네요, 전혀 내향적이지 않은데"라는 말과 "가끔 혼자 있는 거 좋아하시죠? 다 알아요"라는 말을 동시에 한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생활을 1년 넘게 보내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사회적 관계가 뭔지 생각해보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연락을 하면 된다.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한둘 정도 불러내서 만나면 된다. 그런데 괜스레, 거리두기 핑계로 연락을 물리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걸까? 나는 누구를 보고 싶은 거지?
백신을 맞고 일상이 회복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때문에 생긴, 관계에 대한 질문에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 혹시 이대로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을 만날 수는 있는 걸까?
어떤 직관에 이끌려 대학원 과정을 등록했다. 지원하고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세계 대다수 사람들은 우한의 박쥐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학교 수업 듣겠네, 라는 기대를 품고 수강신청을 할 무렵부터 분위기가 심상찮게 변했다.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비대면 운영 방침이 세 학기 이어졌다. 이제 그 세 번째 학기가 거의 끝나간다. 수료학점을 꽉 채우는 동안, 수업은 전부 화상강의로 들었다. 가끔 지도교수를 만나 조언을 구했는데,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학기 수업은 어쩌면 대면 수업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인사하는 거였더라?
화상 강의를 하며 알게 된 사실 한가지는 다 큰 어른들도 이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원 수업의 장점은 모두가 '대학은 졸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어느 정도는 학습된 사회성을 발휘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꺼내고, 수업 이야기도 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과장이나 숨김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아서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번 학기 수업 중 어느 조별 토의 시간에, 대학 졸업한 다섯 사람이 거의 멀뚱멀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일을 보던 순간이 있었다. 이번 학기에 입학한 사람이 대화의 운을 띄우려고 했지만, 그 상황에 문제를 느끼고 있던 나조차도 호응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린 뭘하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뭘 바라고 이걸 보는 중이지? 나는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내 심경을 거리두기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늘 하던 것이라서, 별로 낯설지도 않았다.
이젠 그게 더 익숙해졌으니까.
핑계일지 모르겠는데, 코로나 때문에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내가 학교에 간 것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면, 대화, 교류, 그것이 내가 바란 전부였다. 화면으로 보고, 화면에 말하고, 돌아서면 사라져버리는 생활을 누가 상상했을까. 이건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불성실하게 지냈다.
놀랍게도 그렇게 다들 1년여를 살아왔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편했던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돈이 아깝고, 시간이 아깝고,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좌절로, 분노로 가슴 속에 맴돈다.
상황을 차분히 돌아보면 나는 놀랍도록 안전하고 평안하게 지내왔다. 그러니 참 이상한 것이다. 내 좌절과 분노는. 코로나 이전에는 대체 어떻게 살았지? 거리를 두지 않고, 마스크를 벗은 채로 바깥을 활보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일이었을까?
나 같은 처지에 좌절과 분노는 사치다. 나는 잃은 것이 거의 없다. 가족을 잃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큰 손해를 입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화가 난 건, 학교에 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원했던 방식의 교육에 참여하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거리를 두라는 국가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마음 깊은 데서는 그것을 용인하기 힘든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고.
누구는 더 힘들고, 누구는 더 힘드니까 지나간 것을 다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는 사회적 재난, 아니 지구적 재난이고 인류의 재난이었다. 어느 누구도 멀쩡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거기에 코로나가 개인과 사회와 인류에 던진 과제와 메시지를 해석하는 작업도 주어졌다.
그러니 일단 이 벅찬 회복을 맞이하며, 답답한 것들을 그냥 말하고 싶다. 꼭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그냥 어딘가에라도 이렇게 말이다. 내겐 그 말하기가 백신 이후의 삶으로 내딛는 첫 단추다.
접종 부위인 왼팔이 아직도 욱신거린다. 회복된 일상이 찾아와도 이 아픔이 계속 남아 있을 것만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