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열세 번째 출장길. 이제는 너무 익숙한지라 공항 가는 길도, 비행기도 심드렁한. 나에게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함께 간 동료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출장 둘째 날, 다 같이 만나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회식자리. 우리는 별생각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요새 누구 만나는 사람 있어?"
"남자 친구랑은 잘 지내고 있지?"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예의상 물어보는 이런 질문들 중 하나에, 예상치 못하게 우리 팀 신입사원의 안색이 변하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순간 모두의 정적. 그리고 그녀의 대답.
"저 어제 헤어졌어요..."
시차가 있는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 아침에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왜 그녀가 평소에는 잘 먹던 기내식을 거의 못 먹었는지, 길지 않은 비행시간인데도 승무원이 찾아가서 흔들어 깨울 때까지 담요를 덮고 깊이 잠들었던 것인지, 대만 개발자들과 회의하면서 평소보다 더 자기 할 말을 잘 하지 못했는지, 전날 저녁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러 가서 소화가 안된다고 했는지, 그저 평소보다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반차를 낼까 했는데... 출장 와서 그럴 수도 없고..."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신입사원이기에, 헤어지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얼마나 슬픈 일인지... 7년 차 직장인인 나에게 있었던 몇 번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은 총 세 번이었다. 6년 반을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다음 날도, 시차가 있어 밤새 다투다가 해가 뜰 무렵에 결국에는 헤어지자고 말했던 날도 모두 출근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올해 삼일절이 최악이었다.
여자 친구와 일주일째 다투다가 만나기로 한 날. 가로수길에서 점심을 먹으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결국 우리는 이별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일하는 개발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오늘부터 적용된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데이터가 잘 못 나오고 있다고... 그 길로 바로 회사로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데이터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방향의 데이터를 뽑아보다가 결국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개발자에게 수정 요청을 했다.
수정 코드를 배포하고 데이터가 나오기까지는 두세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집에 가기 애매해서 회사 휴게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별의 슬픔도, 엉망이 되어버린 데이터도, 모두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지금 뭔가...' 그저 멍했다. 어쩜 이보다 최악의 날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 코드를 배포해도 계속해서 문제가 고쳐지지 않아, 결국 세 번을 배포하고 나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데이터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오던 길. 그 무거운 발걸음, 슬픔, 냉랭했던 밤공기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헤어졌던 그 시기에 함께 일했던 주위 동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던지라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실의에 빠진 나를 배려해주던 내 선배들과 동료들의 말과 행동들 역시 내 기억에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헤어진 다음날도 우리는 출근을 한다. 대학교 때에는 이별을 하고 나면 한 삼 일간 기숙사에 처박혀서 수업도 안 가고 원 없이 슬픔에 파묻혀 있을 수 있었지만, 회사의 돈을 받는 직장인이 되어서는 쉽게 그리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오늘이지만, 회사에 가서는 어제와 똑같은 일상을 살고, 똑같은 이슈를 맞이하고, 똑같은 웃음을 지어야 한다. 어른의 이별은 이렇게 마음껏 슬퍼할 시간을 갖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다.
처음으로 이러한 경험을 한 그녀에게, 헤어진 다음날도 출근을 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주위 동료들로부터 많은 힘을 얻었듯이, 나 역시 그러한 동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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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