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네, 드릴게요. 그런데 영문자막입니다. 하지만 가능하시겠지요? 그런데 놀랐습니다. 젊은 분인데 1995년작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듯해서요."
"저, 옛날 영화 취향입니다. 영어자막이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아하! 제가 가지고 있는 영화 list 가 있는데, 그것도 보내드릴게요. 1,000개 정도 되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선별했어요. 필요하신 자료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미국에서 중학교 때부터 본 영화들이라, 남다른 자료들입니다. 지금 퇴근하시나요?"
"네 방금 퇴근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특히 혼자서 여러 번 돌려 보는걸 좋아합니다~) 평소에 자주 보고 있거든요~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그날 밤, 2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제가 가지고 있는 1,000여 편의 영화파일을 그대로 복사해서 외장하드 드라이브에 넣어서 수정이에게 선물을 하였습니다. 매우 좋아하던 그녀, 정말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맞았다는 통속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리는 이날 이후 주저할 것 없이 많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전화로 또는 SNS messenger로, 그리고 문자로. 이메일도 우리의 대화 도구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Facebook 에 많은 흔적들을 남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 한 낯선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둘의 대화는 깊었고 서로의 문제, 특히 그녀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그리고 꿈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방 출장은 분기에 한 차례였지만 오전 일찍 그녀가 나오는 지방 뉴스를 보는 일은 제 일과가 되었으며, 그녀가 입고 있던 옷에 대한 칭찬과 궁금한 점 등을 그날 저녁에 나누곤 하였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과는 나누지 않았던 제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제가 그녀에게 '장미'라는 애칭을 지어 주었던 듯합니다. 정말이지 그녀는 장미와 닮은 사람이었지요... 마치 예전 가요 중 4월과 5월이란 duet 이 부른 "장미"의 가사처럼, 때로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갔으며, 때로는 잠 못 이룬 나를 재우고 갔고, 동화속 왕자가 부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