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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15. 2015

"재회 (2001년 04월)" - 6

여섯번 째 이야기

"우리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꽃씨가 날아서 수평선 위에 꽂혀진 바늘에 맞닿는 엄청난 확률의 인연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


혜련이가 제게 쓴 편지의 일부입니다.


세상에는 필연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필연의 상대가 한 명일 수도 있으며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인 만남이야 있었겠지만 필연적인 사랑을 한 번도 못하고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듯 합니다.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 또는 누구의 소개를 통해, 아니면 같은 회사나 학교에서 알고 지내다가 만나서 사랑을 배우거나 하게 되고, 결혼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이겠지요.


필연 - 이런 만남을 어려서부터 간절히 바란 결과일까요? 혜련이의 말대로 그녀와 저는 엄청난 확률의 인연이었습니다. 필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픈 필연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랑보다는 필연적인 사랑을 한 번도 못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저는 이런 슬픈 필연에게도 감사해야 겠지요.


간절히 원하면 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동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필연의 관계일 경우 지구의 반대쪽에 있어도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거의 닮아가고 시공간을 넘어 동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때 경험했었지요. 혜련이의 아래 편지와 같이, 저도 그 당시 하루 하루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었고, 구름위를 걷는다는 표현이 그저 유행가사의 말들만은 아니었구나 - 하며 웃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뉴욕에서 그리고 혜련이는 서울에서 - 13시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수많은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통해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말하고, 생각했습니다.


와! 멋지다.!!
보낸날짜 2001년 03월 08일 목요일, 낮 12시 46분 46초 KST
 
멋지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멋진 모습이야. 뉴욕 최고의 여자 친구가 반할만 한걸?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미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 글쎄.. 정원이가 맞는지 의심스럽네...(농담!) 근데 참 친숙한 느낌이 들어.너도 날 보고 그렇게 느꼈니? 우리 어릴 때 부터 알던 20년 가까이 된(?) 친구라서 일까? 요즘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
 

초등학교의 꼬마 아이들이 말도 못하고 짖굳은 장난만 치다가 첫 사랑을 느끼고,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살다가 20여년만에 인터넷을 통해 재회해서 어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혀 서로를 그리워한다... 한사람은 뉴욕에, 또 한사람은 서울에서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의 감정을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기대와 설레임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사고도 외모도 능력도 나무랄데 없는 멋지고 건강한 남자는 독신을 꿈꾸는 로맨티스트고, 소박하고 평범하게 자란 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멋진 여생을 꿈꾸며 공부하고 있다. 무슨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네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고민을 해봤어. 우리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꽃씨가 날아서 수평선 위에 꽂혀진 바늘에 맏닿는 엄청난 확률의 인연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
 
어찌됐건 넌 내 소중한 친구니까, 난 네가 좀 더 행복하고 너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내가 될지, 아니면 타인이 될지 모르지만 그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께. 그리고 나도 너에 대해 성실하게 알아가도록 노력하구...우리의 서로다른 차이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나보다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거 잊지말자...
    

나에게 왠지 모를 기분좋은 웃음을 선사해준 고마운 친구 정원이! 안녕~~  


이렇게 우리는 매일 한두장 씩 또는 다섯장 씩의 이메일을 3월 마지막 날까지 주고받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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