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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16. 2015

"재회 (2001년 04월)" - 7

일곱번 째 이야기

"hyeryeonjungwon! 너무너무 맘에 들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메세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hyeyreonjungwon 으로 보냈어. 우리 사진이나 다른 자료들은 기존 아이디로 사용하고, 거기에서는 글만 적어 보내는게 어때? 너가 동의하면 이제부터 보낸 메세지는 너처럼 copy 해서 보관할래. 나중에 멋진 시나리오가 되지 않을까? 너무 기분 좋다!!^^"


3월 중순이 지나갈 무렵 쯤, 혜련이에게 제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메일을 공유하고 보관하기 위해 한 계정을 만들자 . . . 이렇게 하면 서로의 개인 이메일에서 이 공유이메일로 이메일을 발송하여 서로의 이메일을 언제나 읽고 보관할 수 있고, 같은 공간을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혜련이는 이 아이디어를 참 좋아했습니다. 20일간, 수많은 이메일과 이야기를 하며 다소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이 제안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갔나 봅니다. 이 후 우리는 이 계정으로의 편지여정을 계속 하였지요.


"(3월 24일) 이런 계획을 나름대로 잡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성과의 교재? 시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 하지만, 인생의 계획과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언제든 함께 하고 싶어. 우리 부모님도 원하시는 부분이기도 하지. 난 일단 독신은 아니니까, 그리고 너 처럼(?) 주위에서 나이를 염려하기 때문인지, 최근 여러 방식으로 만남을 주선해 주기도 해. 너도 경험이 있겠지만... 그래서 한 두 달 전 소개로 몇 번 만나게 된 친구가 있지. 지속이될지는 아직 미지수! "이성과의 교재"라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만남의 횟수나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나도 너처럼 신중하고싶은게 기본 입장이야.

난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 이제 지난 20여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가에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Gap이 참 어렵게 느껴지네. 서로 옆에 없는 사이에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고...어려운 일이라는걸 알지만, 정원이를 내 곁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우리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그래서 이런 벽들 때문에 서로 표현해야하는 감정을 절제함으로 인해 "아픔"을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차라리 장미의 가시가 덜 아플 듯!)"


그 당시 현대그룹 정 주영 회장님이 별세하신 때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이 분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자동차 주식에 대한 거래업무를 연 초에 맡아 본 인연으로 장례식에는 못 가지만 4월 초 한국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방문을 하기로 하고, 이 때 혜련이에게 한국 방문/출장 소식을 처음으로 알려주었습니다.


"(3월 26일) 이틀 연락 못했다. 길게 느껴져서 야속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을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북악스카이웨이란 곳에(청와대근처 삼청동)가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 그 중 너에 관한생각도 포함! 너와 관련된 두 가지 생각을 공개할께.


하나는 빠른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올 생일에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축복된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야. 널 내게 보내주셨으니... 난 절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어".그리고 그 분을 사랑한다. 또, 그 분이 내게주신 "인간"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해. 이성적인 만남은 세속적인 잣대로 선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분과 맺어진 관계나 그 분의틀 안에서 맺어진 사람과는 이 세상이 다한다 해도 변할 수 없을거야. 그 사랑을 내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영원이 사랑하고 싶어. 인간이기에 지나친 욕심과 감정이 가끔씩 괴롭히고 아픔이 따르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선물을 이용하면 이겨낼 수 있을거야. 정원이는 예정된 나의 사랑이야. 어떤 방법으로 승화될지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그런 시간을 두고 볼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아름다운 내 사랑이야.

두 번째는 정원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참 포괄적이고, 발전된 사랑의 방법인 듯한 생각이들었어. 너를 알고, 너를 느끼고, 너와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 우리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 그래...너의 사랑법을 배우고 동참할 수 있도록 많이 얘기해 보자."


3월 초와 3월 말 편지들 사이사이엔 몇 번의 다툼도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해 희망하는 것, 원하는 것, 그리고 그 당시 우리 나이엔 피할 수 없었던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서로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였던 듯 합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 확고했지만, 혜련이는 나름대로 이 차이를 극복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 듯 합니다.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맞추어보고, 끼워넣어보고, 강경했다가는 다시 원래의 침착함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결국은 만남이라는 기점을 통해 방향을 잡고자 했었나 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제가 그 때 알지 못했었지요.


"(3월 30일) 어제 너의 꿈을 꾸었어. 처음이야. 내가 널 보러 뉴욕에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마구 쳐다봤어. 너가 너무나 유명인사여서인지, 아님 우리가 너무 잘 어울려서인지...어색해서 방으로 들어왔어. 너가 날 편안하게 안아주더라.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앉아있었어. 너무나 편안한 느낌을 주었지.내가 널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 예전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잠시 웃음을 머금었어.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이틀 면 만날 수 있으니 참 기분좋다. 정원이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 처음 만나면 얼마나 떨릴까? ^^"


저를 포함한 task force team 은 뉴욕시간으로 월요일 밤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저는 한국 시간으로 4월 1일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하루 반 나절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혜련이와의 4월 1일 월요일, 거짓말같은 우리의 재회를 약속하며 저는 차를 타고 JFK Airport 로 향했습니다. 한국으로의 거의 20년만의 귀환이었습니다. 소공동 Hotel Lotte 에서 정오 12시, 우리의 약속장소와 시간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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